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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마스테 Jul 09. 2020

Sunshine 비가 내리던 Mt. Pirongia

아이들과 함께한 트레킹

 

피롱기아 산 (Mt. Pirongia)


마음이 복잡할 때, 엄마의 역할로 주어지는 과도한 몫들이 그저 싫을 때, 타지에서 이방인처럼 느껴지는 날에 걷기는 최고다. 좁은 공간에 나를 가두는 것보다 그냥 운동화를 꿰어 신는다. 차를 타고 나가면 조금 더 좋은 트레킹 코스가 많다.  고사리 나무와 이끼로 둘러싸인 트레킹 코스를 걷는다. 그러고는 나에게 빗방울을 툭툭 털듯 '별거 아니야'라며 스스로를 추스른다. 일희일비하지 않는 삶. 걸으면서 스스로 추스른다. 그저 빗방울 털듯. 툭툭.  


집에서 차로 약 1시간 30분. 북섬 와이카토 지역에 위치한 피롱기아 산. 산행은 왕복 5시간. 아이들과 나는 하이킹에 약간 자신감이 붙을 시기였다. 아침에 구름 한 점 없는 게 걷기 좋은 날이라고 생각했지만, 올라가다 보니 비가 조금씩 내렸다. 내려갈까?라고 생각했지만 알 수 없는 뉴질랜드 날씨였다. 또 그칠지도 모르지.  



It’s quite hard


중간쯤 올라오면서 홀로 내려오는 중년의 키위 남자분을 만났다. 트레킹 코스에서 만난 사람은 단 한 사람. 나는 반가워서 얼마나 더 가야 하냐고 물었더니 그분 대답. 


“It’s quite hard.” 


그 말을 들었을 때 욕심부리지 말고 그냥 거기서 내려올걸. 올라가면서 별생각이 다 들었다. 이 길이 맞는 것인지 틀린 것인지 도통 알 수 없는 길도 있었다. 이렇게 진흙이 많은 길이라는 것을 확인하지 못한 나의 탓일까. 비까지 추적추적 내렸다. 



Mt Pirongia Forest Park


만신창이


그야말로 진흙 투성이인 길을 뚫고 신발은 만신창이, 몸도 만신창이, 마음마저 만신창이였다. 여기까지 아이들을 내가 왜 데리고 왔을까.  한국에 있었으면 등산하면서 중간쯤 가다가 힘들면 막걸리 한잔을 마실 수 있다. 가지고 온 달달한 초코바, 자유시간으로 내 마음을 달랠 수 있을 텐데. 등산하고 내려오면 산채 비빔밥집과 감자전을 먹을 수 있는 곳이 줄지어 있는데. 그날따라 점심 도시락과 물통을 담은 나의 어깨는 무너져 내렸다. 더욱 힘든 것은 비가 내린 것과 신발이 축축하게 다 젖은 것이었다. 


'집에 가서 이 운동화를 언제 다 빨지?'

'운동화도 하나씩밖에 없고 요즘 비가 자주 내려서 마르지도 않을 텐데.'  


내 마음은 이미 퇴적과 풍화작용을 겪은 것 같았다. 아이들은 달랐다. 딸은 엄마는 이런 길도 못 가면 앞으로 어떻게 할 거냐고 한다. 동생도 뭣도 모르고 질세라 맞다고 한다. 아이들은 '나중에 엄마 빼고 아빠랑만 올 거야'라며 마음을 단단히 무장했다. 내 가방은 도시락으로 이미 어깨가 무너져 내리는데. 어깨가 가벼워지면 좋겠다는 생각에 점심이라도 먹고 가자고 아이들을 달랬다.



Mt. Pirongia Forest Park



쏟아지는 햇살 비


점심으로 사 가지고 온 초밥을 먹었다. 배낭이 한결 가벼워지자 더 힘이 나는 것 같았다. 아이들은 앞서갔고 여지없이 나는 뒤따라갔다. 


“엄마! 여기에 Sunshine 비가 내려!”

“비가 내린다고.?”

“빨리 올라와. 눈부신 Sunshine 비가 내린다고.”     


아이들을 따라 조금 더 올라가 보니 우거진 나뭇가지 사이로 강렬하고도 촘촘한 햇살이 나뭇잎 사이로 눈부시게 내리고 있었다. 꽃과 나무 이름을 잘 알지 못하는 도시에서 자란 나는 그야말로 생태맹이다.  햇살을 가득 머금은 이름을 알 수 없는 나무들은 보석처럼 반짝거렸다. 손으로 눈을 잠시 가리고 코로 한껏 더 초록을 느껴본다. 하늘은 아름답고 눈 부신 햇살은 나에게 ‘어서 와’ 하며 반겨주는 것처럼 느꼈다.     


Mt. Pirongia  Nature Walk


하이킹을 하게 되다니


낮은 언덕뿐 아니라 산이라면 질색을 했었다. 남편을 따라 억지로 따라가기도 했다. 산은 꼭 정상까지 가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남편을 설득하기도 했다. 뉴질랜드에서는 내가 조금 달라졌다. 어디로 갈지 매번 검색하고 루트까지 검색하는 달라진 나를 발견했다. 왜일까. 왜 그랬을까. 온전히 자연을 느낄 수 있어서였다. 그것을 소중하게 지키려는 사람들의 마음도 그대로 느껴진다. 줄지어 늘어선 식당들이 있어서 종합 선물세트처럼 먹고 싶은 음식을 고르기가 편하긴 하지만 생각해 보면 자연 앞에서 미안한 감정까지 든다.      


보폭의 리듬에 맞춰 걷다 보니 아이들과 함께한 트래킹이 생각났다. Mt. Pirongia Nature walk. 아이들과 같이 걷기 좋은 쉬운 길이었지. 가벼운 산책코스로 되어있고 시냇물을 보면서 가지고 온 커피를 마실 때 참 좋았는데. 삶의 오아시스 같은 청량감이랄까. 해밀턴에서 북서쪽 30분 거리에 있는 어마어마하게 큰 카우리 나무를 볼 수 있었던 하카리마타 트레킹. 신발에 붙어있는 세균이 흙으로 들어가 카우리 나무의 뿌리를 헤친다고 신발을 소독하고 가야 하는 곳.


Rotorua Redwood tree walk


레드우드 숲


지구 상에서 가장 크게 자라는 나무 중 하나인 로토루아의 레드우드 숲도 참 좋았는데. 친절하게 트랙 type과 색, 거리, 시간이 표시되어 있어서 아이들이 보기에도 편하고 거리와 시간을 예상할 수 있어서 좋았는데. 그때 그 느낌. 170만 평의 거대한 숲이 주는 힘. 나뭇잎들이 계속 쌓이고 쌓여서 푹신푹신한 땅이 마치 얇은 매트리스를 걷는 느낌이었는데. 그런 뿌듯하고 기분 좋은 경험들을 생각하니 비로소 피롱기아 산을 걷고 있는 내가 보였다. 적당한 그늘과 바람 사이로 거대한 나무들 사이를 걷는 느낌도 좋고 숲이 주는 조용하고 고요한 가운데 각기 다른 새소리를 들렸다.         

  


Mt. Pirongia


정상까지는 가지 못했지만


피롱기아 산은 와이카토 지역에서 가장 높은 산이었다. 키가 어마어마하게 큰 소나무와 침엽수림을 만날 수 있었다. 이끼가 뒤덮은 나무들과 알 수 없는 종류의 버섯과 열매들, 키가 작은 고사리 나무부터 선캄브리아 시대가 아닌가 싶을 만큼 어마어마하게 큰 고사리 나무까지 볼 수 있는 뉴질랜드 대자연이었다.      


비 내리는 피롱기아 산을 갔던 그 날은 끝내 정상까지는 가지 못했다. 내려오는 시간을 생각하면 어두워지는 날씨 때문이었다. 집에 와서 산더미처럼 쌓인 빨래를 보며 다시는 트래킹을 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어느새 나는 아이들과 운동화를 신고 또 다른 곳으로  트래킹을 하고 있었다.



하카리마타 카우리 루프 트랙  <Hakarimata Kauri Loop Track>


 마치 소풍을 온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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