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어린이집 다닐 때까지는 교과서 정석대로 아이를 키웠다. 모든 육아서를 섭렵하면서 '이렇게 키워라' '저렇게 키워라' '아직도 부족하다'라고 채찍질하는 전문가의 육아서들을 수두룩하게 읽었다. ‘그렇구나’. ‘내가 부족했구나’ ‘더 열심히 해야지’를 반복했다. 아이에게 화내지 않고 창의적이고 질문하는 아이로 키워야 한다고 선배 엄마들은 조언했다. 온갖 공부법에 관련된 정보들은 내가 좋은 엄마가 되지 못한 것에 대한 자책감을 남겼다. 모든 육아서에는 '아이'만 있고 '엄마'는 없었다.
어느 순간 ‘나’는 사라졌다. 경력 단절에 일은 하기 힘들었고 자신감과 자존감이 떨어지고 우울감을 느꼈다. 가사노동, 육아, 질 낮은 커리어도 엄마 혼자만의 몫, 직장을 그만둔 것도 엄마 혼자만의 몫, 아이가 다치거나 공부를 못해도 엄마 혼자만의 몫이다. ‘언제까지 24시간 대기 상태에 있는 이 삶을 지속해야 하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로서의 삶은 지칠 대로 지쳤다.
7080에 태어난 여성들에게 육아란 어떤 것일까? 의욕은 넘쳐 났지만 경쟁으로 끝나는 공허라고 생각한다. 소위 배운 여성들이고 그 배웠던 것을 ‘나’를 찾는데 에너지를 쓰는 것이 아니라 고스란히 ‘자식 성적’으로 몰입하고 있다. 4차 산업 혁명 시대에 맞는 육아를 해야 한다고 들 한다. 그것은 나를 돌보고 찾는 것부터 해야 하는 것 아닐까.
10년이 지나고 나니 '좋은 엄마'는 포기했고 사실 저는 '멋진 엄마'가 되고 싶다는 바람이 생겼다. 그동안 아이들을 키우는 것은 방향을 알 수 없는 안갯속을 헤매고 다니는 것과 같았다. 뿌연 안갯속에서 헤매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함 때문에 가끔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이에 대한 욕심은 커져만 갔고 원하는 만큼 아이는 따라와 주지 못했다. 그때마다 책을 찾기 시작했다. 육아서가 아니었다. 철학책, 자기 계발서, 소설책 등 인문학 책을 들추기 시작했다. 책은 때로는 도피처가, 때로는 친구가, 때로는 지혜를 던져주는 스승 되어 실타래 같은 일상을 풀어 준다.
책을 읽고 나서 휙 던져버리니 input만 있었지 output은 없었다. 날아갈 것만 같은 생각을 붙잡을 방법이 없었다. 책을 읽고 나서 블로그에 글을 올리기 시작하면서부터 내 삶은 조금씩 변했다. 책은 지저분하게 보면 볼수록 좋다고 했다. 중요한 부분은 꼭 밑줄을 치고 필사를 한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들은 꼭 독서노트를 만들어서 필사를 한다. 눈으로 독서하고 중요한 내용은 필사를 하고 읽고 난 후 리뷰를 SNS에 올린다. 뭉개 뭉개 피어나는 생각들을 부여잡고 휘발성 같은 생각들을 날아가지 않게 해 주려면 꼭 필요한 작업이다. 독서는 손끝에서 나온다는 말에 큰 공감을 한다. 해빗(Habit)의 저자 웬디 우드는 ‘어떤 행동이 자동화됐다고 느낄 때까지 걸린 시간은 평균 66일이었다. 즉 새로운 행동을 두 달 조금 넘게 반복하면 습관이 형성된다는 뜻이다.’라고 했다. 책을 읽고 쓰는 습관은 최고의 지적인 활동이다.
책을 읽으려면 새벽 시간이 제일 집중도가 높았다. 매일 4시 30분에 일어나는 것은 이제 루틴이 되었다. 명상 후에 독서를 할 수 있는 시간은 적어도 2시간. 그 조용한 2시간은 내가 성장하는 시간이다. 중요한 것은 가장 먼저 해야 한다. 일어나서 정신을 차리고, 명상을 하고, 독서를 한다. 이동진 작가는 ‘좋은 습관은 세상에 대한 갑옷’이라고 표현한다. 좋은 습관이라는 갑옷을 입는다면 칼이나 화살이 와도 이 옷은 나를 지켜주는 것이다. 매일 새벽 책을 읽는 습관은 나에게 ‘투자’인 셈이다.
아이들이 학교에 간 오전에는 카페로 출근한다. 역할에서 벗어나 나 자신과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이다. 카페에 갈 때는 책, 포스트잇, 필기도구, 독서 노트, 태블릿을 백팩에 챙긴다. 아메리카노를 시킬 때는 디저트와 함께 그렇지 않으면 제일 비싼 음료를 시킨다. 그 시간은 공간을 대여해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평균 카페에서 보내는 시간은 3시간. 백색소음과 커피를 마시면서 책을 읽는 시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한 시간이다. 가끔 좋아하는 재즈 연주곡이 나오면 책 읽는 것이 더 즐겁다. 새로운 지역으로 이사 왔기 때문에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은 어쩌면 더 혼자만의 시간을 집중할 수 있는 좋은 환경이다. 그렇다. 나는 이 동네의 아싸. 아웃사이더이다. 예전에는 아이들이 학교 간 시간에 의미 없이 시간, 돈, 에너지를 낭비하기도 했다. 단순 지출은 잠시 즐거움을 준다. 하지만 나를 위한 투자라면 한 달에 20만 원을 써도 아깝지 않게 되었다.
비문학도 읽어야 하지만 문학은 왜 읽어야 할까? 인간은 한 번밖에 살지 못한다. 소설을 읽으면 타인의 삶으로 들어가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하게 해 주고 감정을 이입하게 해 준다. 인생에서의 모든 것을 다 경험할 수 없기 때문에 간접적인 체험으로 삶의 문제를 예리하게 생각하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엄마의 그릇이 커야 아이를 편하게 담을 수 있다. 아이는 엄마의 등을 보면서 자란다는 말이 있다. 엄마가 책을 읽고 있으면 아이에게 주는 영향은 정말 크다. '독서는 풍성한 내면을 갖게 해 주기 때문에 없는 시간을 쪼개서 소설을 읽는 사람은 내면을 지키려는 욕구가 강한 사람들입니다. 탄탄한 내면을 가진 사람은 남의 의견에 쉽게 흔들리지 않게 됩니다.' 김영하 작가의 말이다. 무엇이 좋은 엄마일까. 세상이 정한 기준에 흔들리면 안 된다. 엄마란 삶의 가치와 태도를 가르치는 사람이다.
대나무의 한 종류인 '모죽'은 씨를 뿌린 후 5년 동안 물을 주고 가꿔도 싹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5년이 지난 후에는 죽순이 돋아나기 시작해 하루에 80cm씩 자라기 시작해 6주 후에는 하늘에 닿을 만큼 자란다. 책을 통해서 그런 빛나는 순간들이 모여서 마법이 이루어 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