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교사의 웃픈 현실
새벽꿈에 민원 전화를 받았습니다. 지금부터 이야기는 꿈입니다. 이 한 줄의 글을 빼먹고 실제 상황이라고 생각하지 말아 주세요.
달리는 버스 안에서 전화를 받았습니다. 다짜고짜 학생 어머니가 화를 냅니다. 그 순간 갑자기 정차된 버스 바깥에 무차별 총기 난사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꿈이니까요)
버스 기사님이 외칩니다.
"모두 엎드리세요! 지금부터 무정차하겠습니다. "
버스는 안전지대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순간 저는 엎드린 자세로 어머니께 말합니다.
"어머니, 지금 총알이 날아오고 있어요. 조금 이따가 전화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안도했습니다. 총알이 빗발치는 상황에 전화받을 수 없다는 건 누구나 인정할 만한 부분이니까요.
그리고 버스는 무려 한 시간 동안 무정차를 하며 내빼기 시작합니다.
저는 그 상황에서도'아, 이 버스 언제 정차하는 거야! 빨리 다시 전화해야 하는데...' 하며 불안해합니다. 총알을 피했다는 안도감보다 빨리 민원 전화에 응대해야겠다는 마음이라니!
그리고 안전지대로 온 버스 안.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충격에 빠졌겠다 그리고 실시간 뉴스로 도배되었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저는 다시 그 어머니께 전화합니다.
"어머니, 뉴스 보셨어요? 제가 그 사건 현장에 있었습니다."
"네. 선생님! 얼마나 놀라셨겠어요? 괜찮으시죠? 하지만 선생님 우리 아이가....."
다시 시작되는 민원의 소리에 저는 조용히 휴대폰을 끄며 바닥에 엎드립니다.(거의 좌절하는 지경)
그리고 꿈에서 깨어났습니다.
한참 침대에서 너무나도 생생한 이 민원 누아르를 재생해 보았습니다.
나는 어째서, 꿈속에까지 민원 응대를 해야 하는가?
그것도 삶과 죽음의 극한 상황 속에서도 왜 전화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또 그 어머니는 왜 이 극한 상황을 겪은 교사를 위로하는 척 하지만 여전히 자기 할 말만 하려고 하는가?
를 되새김하면서 한참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총기난사의 극한 상황보다 더한 민원 상황이라니!
무척 웃픈 현실입니다.
꿈은 현실의 반영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랜 전에 이런 적이 있었습니다.
아이의 상태가 심각해서 용기를 내어(아이의 고칠 점을 말할 때는 용기를 내야 하는 현실입니다.) 말씀드렸습니다. 전화를 끊었는데 1분 후에 다시 전화가 옵니다.
"선생님, 왜 우리 아이를 미워하세요?"
또, 학급에서 친구들 서로 칭찬하기 활동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교감 선생님께 잠시 교무실로 내려오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0 선생님, 학부모가 자기 아이는 칭찬하기에서 한 번도 이름이 나오지 않아 속상하대요. 그래서 다른 방법으로...."
교감 선생님이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전했지만 저는 그 이후로 칭찬하기를 멈추었습니다. 그날 이후, 제가 가장 많이 받은 민원은 이거였습니다.
"선생님, 왜 칭찬하기 안 해요?"
"칭찬하기 언제 해요?"
"왜 선생님 마음대로 칭찬하기 그만둬요?"
반 아이들로부터 받은 민원이죠.
결국, 좋은 교육적 소신으로 시작한 활동이 특정한 아이의 심기를 건드린다면? 저는 할 수 없게 됩니다. 소신을 갖고 하시면 되지 않나요?
라고 묻는다면,
네네.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지난 20년 가까이 교육 활동을 하면서 제 학급에서 소신을 갖고 하지 않을 활동이 무엇이 있겠습니까만은 학교 현장 최전선에서 느끼는 제 소신은 언제나 위험천만한 소지(아동학대 등)를 충분히 갖고 있다는 점에서 망설여지게 합니다.
갈수록 소신 있고 당당한 교사가 아닌,
갈수록 위축되고 자기 검열(이렇게 하면 또 민원이 올까? 등등)에 시달리는 교사가 된다는 점에서
저를 비롯한 많은 선생님은 점점 위태로워 보입니다.
총기 난사의 상황에서도 제가 민원을 걱정했던 것처럼,
묻지 마 범죄 앞에서 묻지 마 민원을 두려워하는 대한민국 교사의 웃픈 현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