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쓰다보면 프로젝트 16
초 6학년 아이들이란?
초등에서 6학년은 힘든 학년이에요. 제가 6학년을 지원했을 때, 없던 병도 생길 수 있다며 누가 말리더라고요.
하지만 힘든 학년인 만큼 교직 생활에 꽤 많은 이야기를 남기곤 하는데요.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해 볼까 해요.
<힙합 사나이, 은준이>
은준이는 10년 전 만난 아이입니다.
힙합을 사랑하는 폼생폼사의 아이였는데 3월 개학식 첫날부터 검은 캡 모자를 푹 눌러쓴 채 교실로 진입했죠.
- 교실에서는 모자 벗자!
-모자 벗으라고 했는데???
-어? 왜 안 벗고 있니?
제가 아무리 뭐라 해도 꿈쩍을 안 하더라고요.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아 그날 남아서 이야기를 했어요. 감이 오더라고요. 내가 아무리 뭐라 해도 그 아이는 절대 벗지 않겠다는 그런 감이요.
마치 햇빛과 바람이 기싸움에서 바람이 아무리 세게 불어도 남자의 코트를 벗길 수 없었던 것처럼요.
지금 나에겐 필요한 건 햇빛 전략이었죠.
그날 은준이랑 많은 이야기를 했어요. 은준이에게 그 검은 모자는 힙합의 상징이라나? 그날 은준이와는 이렇게 약속했어요.
-딱 한 달만 시간 줄게! 한 달 뒤에는 꼭 모자 벗고 교실로 와!
한 달 후,
아침 자습시간이었는데 은준이가 언제 오나? 마음이 쿵쿵하더라고요. 정말 약속은 지킬까? 아닐까? 오늘은 약속의 날인데 어쨌든 선생님의 단호함을 보여줘야지. 그럴 때였어요.
-우와! 은준이 모자 벗었다.
은준이가 쑥스러운 듯 자꾸 머리를 만지며 자리에 앉았어요. 녀석은 약속대로 모자를 벗고 나타났죠. 더없이 기쁜 날이었어요.
그해, 은준이가 맡은 1인 1 역할은 점심 DJ였어요. 제가 은준이한테 부탁했죠.
-선생님은 너희들이 좋아하는 음악 잘 모르고, 또 알고도 싶으니깐 네가 점심 먹고 친구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들려 줄래?
그 역할은 아이에게 딱 맞는 일이었어요.
숙제는 까먹어도 자기가 해야 할 1인 1 역할은 꼬박꼬박 잘 했으니까요.
은준이는 지금쯤 자신이 미치도록 사랑했던 힙합 음악을 하고 있을까요?
가끔 궁금해집니다.
<곧 혼나도 로맨스>
준수는 꽤 인기가 많았어요. 특히 여학생들 사이에서 인기는 거의 아이돌급이었어요. 잘생긴 외모에 좋은 매너, 그리고 연기 학원을 다니고 있어 모 드라마에 단역으로 나오기도 했고요.
하지만 준수는 숙제를 거의 해 오지 않은 아이 었어요. 바쁘다는 핑계도 있었지만 바쁘지 않은 날도 그러했으니깐...
한 번은 제가 준수에게 엄하게 이야기했어요.
-오늘은 무조건 남아! 남아서 숙제하고 가! 알았지?
평소와 달리 단호하게 말하는 선생님을 보고 준수도 놀란 듯했어요. 그리고 준수의 좋은 점은 항상
-네네, 선생님!
-아! 숙제 못해서 죄송해요. 선생님. 남아서 하고 가겠습니다.
등..
선생님께도 매너가 좋았던 아이랍니다.
그런데 그날!
유독 아이가 고개를 흔들며 부탁을 했죠.
-선생님, 오늘은 정말 안 돼요! 내일, 내일 꼭 남겠습니다.
-안 돼! 오늘 무조건 남아!
-그럼 선생님. 딱 한 시간만 나갔다 다시 올게요. 네?
-학교를 나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일은 없어. 위험해서 안 돼! 남아서 숙제하고 가!
그런데 이 녀석 갑자기 눈물을 글썽입니다. 그리고 두 손을 모아 싹싹 빌어요.
제발 한 번만 그렇게 해 달라고요!
제가 모르는 엄청나게 곤란한 일이 있나 싶어, 저는 한 발짝 뒤로 물러섰어요.
-딱 한 시간이다! 알았지?
그리고 약속의 한 시간!
3시 30분쯤 되었을까요? (보통 6교시하면 2시 30분에 끝나요~)
아이가 헐레벌떡 교실로 뛰어 왔어요.
-선생님, 저 왔어요!
-그래? 그런데 왜 나갔다 온 거야? 말해 줄 수 있겠니?
-네, 그게....
한 동안 말을 못 하더라고요. 머리만 긁적긁적!!
그리고 입을 열었어요.
-제 여자 친구한테 오늘은 꼭 학원까지 데려다준다고 약속했거든요. 지난주엔 촬영이 있어서.
그래서 학원까지 데려다주고 왔어요.
오 마이 갓!
전혀 예상하지 못한 답안을 듣고 저는 어안이 벙벙! 그리고 두 손을 싹싹 모아 빌었던 이유가.... 그 아이의 마음속에서 백만 년 멀어졌다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 돌아왔어요.
'뭐, 그럴 수도 있지!'
이해하는 척하면서 다음부터는 그러지 마라! 한 마디만 했어요.
그리고... 제 마음속에, 제 기억 속에 남는 아이들은요...
한수와 민수, 어쩜 이름도 비슷한지 량현량하처럼 매 쉬는 시간마다 짝을 이루어 춤을 추며 친구들을 즐겁게 해 준 녀석들.
웹 소설을 좋아해서
글쓰기 공책에 웹 소설만 적는 은하(가명)
쉬는 시간에도 공부만 하는 아이인데 6학년 우리 반이 되면서 공부를 안 한다고
상담하러 온 어머니... 그 어머니께
"아니, 쉬는 시간에는 쉬고 공부 시간에는 공부를 해야죠. 쉬는 시간에 공부를 하면 이 아이는 언제 쉬나요?"
라고 반문했었죠.
공부에 지친 아이들도 만났고
마음이 힘든 아이들도 만났어요.
많은 아이들을 만나면서 느낀 건 딱 하나!
"모든 아이들은 사랑받고 싶어 한다!"
입니다.
어떤 이유든, 어떤 상황이든
아이들은 자신이 사랑받고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면,
선생님을 밀어내지 않아요!
그 마음, 그대로 지키며 아이들과 함께 오늘도 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