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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aehyun Kim Dec 11. 2017

비효율의 효율성

세탁기와 빨래건조기는 따로따로

얼마 전 집에 빨래 건조기를 들였다. 아내의 거듭된 요구에 결국 지고 말았다.


이미 있는 드럼세탁기에 건조기능이 있는데 빨래건조기가 따로 뭐하러 필요할까 싶었다. 비좁은 뒷 베란다가 더 좁아질 테다. 세탁이 끝난 빨래를 꺼내 건조기로 옮겨야 해서 품이 더 들것이다. 이미 빽빽한 카드 명세서가 한 줄만큼 더 길어질 것이고 통장은 더 가벼워질 것이다. 공간 낭비, 시간낭비, 카드값 낭비 그야말로 비효율의 가중이다.


그러나 건조기는 굉장히 효율적이었다. 오직 건조밖에 할 수 없는 단순한 녀석이 빨래와 건조를 동시에 할 수 있는 드럼세탁기보다 훨씬 효율적이었다. 서늘하고 건조한 바람으로 말리는 빨래건조기는 뜨거운 열로 건조하는 드럼세탁기처럼 옷이 줄어들게 하거나 구겨지게 하지 않았다. 빨래건족에 달린 먼지 제거 필터는 건조과정에서 생기는 보푸라기와 먼지를 걸러주어 옷을 깨끗하고 포근하게 만들어주었다. 필터가 없는 드럼세탁기는 보푸라기가 모터에 엉켜 붙어 세탁기가 고장 나는 일도 있었는데 이제 그런 걱정은 없어졌다.


All in One의 편리함, 효율성은 사실상 효율이 아닐 수 있다. 학창 시절 독서실을 다녔다. 이론적인 효율성을 따지자면 공부를 하기 위해 굳이 독서실에 갈 필요가 없다. 집에서 독서실로 이동하는데 걸리는 시간과 비용을 감안하면 책상이 있는 집에서 공부하는 게 맞다. 독서실 비를 따로 낼 필요가 없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왜 독서실을 다녔을까? 집중이 잘되기 때문이다. 다른 건 할 수 없고 공부만 할 수 있는 비효율적인 공간인 독서실이 밥도 먹고, 잠도 자고, 공부도 할 수 있는 복합 효율 공간인 내방보다 훨씬 효율적이었다.


언젠가부터 집에 서재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도 책 한 권 읽을 공간은 널려있다. 식사 후 빈 식탁은 책 한 권 펴놓기에는 충분히 넓다. 혼자 자기 싫어하는 아들 녀석이 엄마방으로 달려간 후에 남은 방은 노트북 하나 펴놓기에 결코 작은 공간이 아니다.


그럼에도 비효율이 그립다. 오롯이 책을 읽고 글쓰기만을 위한 그 비효율의 공간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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