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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키운 호랑나비 은혜도 모르고 날아간다

아들과의 이별 예행연습

by 서이담

아이에게 생명을 키우는 모습을 가르치는 게 정서적으로 좋을 것 같아 정말 많은 고민을 하다가 나비 알을 들였다. 여러 가지 동물들과 곤충들을 고민했다. 강아지, 고양이, 고슴도치, 장수풍뎅이 등등. 정말 많은 동물과 식물과 곤충을 보다가 나비를 택한 이유는 키우기가 그리 어렵지 않고, 먹이만 주고 똥만 치워주면 알아서 잘 크며, 성체가 된 다음에는 자연에 놓아주면 된다는 점에서다. 사람의 손을 많이 필요로 하고 외로움을 타는 동물이 아닌 점, 그리고 그 동물의 마지막을 보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우리의 마음을 움직였다.


호랑나비 부화 모습과 나비가 되는 우화 과정을 담은 유튜브 영상도 여러 차례 보기도 하고, 우리는 나름대로 나비를 맞을 준비를 했다. 그리고 쿠팡으로 나비 키우기 세트를 시켰다. 호랑나비는 먹는 잎이 따로 있기 때문에 그 화분에 애벌레 알이 붙어서 우리 집으로 배달됐다. 며칠 후 알에서 검은색 애벌레 다섯 마리가 나왔다.


다섯 마리 애벌레는 금세 세 마리가 되었다. 한 마리는 말라서 죽고, 한 마리는 아이가 모르고 깔아뭉개 죽었다. 미안하다 얘들아. 그리고 초록색으로 변태 하는 과정에서 또 한 마리가 죽었다. 벌레가 잘 자라는 게 쉬운 일은 아닌가 보다 싶었다. 애들이 조금 더 크자 우리는 서식할 수 있는 장소를 다시 마련해주었다. 쿠팡으로 잎도 새로 사서 넉넉히 넣어주고. 번데기가 되기 전 애벌레들은 정말 엄청난 속도로 먹어댔다.


어느 날 애벌레 하나가 미친 듯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때가 왔구나!"

애벌레가 번데기가 될 때가 오면 계속 붙어있을 자리를 찾아다닌다. 그때 애벌레가 기어 다니는 속도가 말도 못 하게 빠르다. 한 마리 애벌레는 우리 집 거실 벽 중앙에 붙어서 번데기가 되었다. 1주 정도 지났을까. 애벌레는 완전히 번데기 상태가 되었고, 번데기 색도 거무스름하게 변했다. 이제 나올 때가 되었나 싶었다.


이튿날, 재택근무를 하던 남편에게 연락이 왔다. 나비가 드디어 번데기에서 나왔다고 했다. 나비는 가만히 앉아 날개를 말렸다. 날개가 활짝 펴지자 나비는 곧장 거실 방충망으로 날아갔다.


'나를 내보내 줘!'


나비는 온몸으로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우리가 알이었을 때부터 성체가 될 때까지 말도 걸고 먹이도 줘가며 키웠건만 야생에서 난 곤충은 야생으로 돌아가기를 바라고 있었다.


아이의 하원 시간을 기다려 나비를 한 번 보여주고는 우리는 방충망을 열어 나비를 날려 보냈다. 시원섭섭했다. 알부터 애벌레 번데기 나비까지 자식을 키우는 마음으로 성장 과정을 지켜봤다.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가는 모습이 대견하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좀 섭섭했다. 저렇게 허무하게 날아가는구나 싶었으니까.


잘 가!

아들 손주 다 볼 때까지 잘 살아라!


자식을 보내는 마음으로 나비를 훨훨 날려 보내주었다.

이렇게 잘 보내 주다 보면 나중에 아들이 장가갈 때도 잘 보내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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