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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개라고 지칭하는 사람을 봤다

고슴도치처럼 말하는 사람들

by 서이담
Photo by Mikael Seegen on Unsplash

#개_같은_사람이_타고_있어요

#건들면_해칠_수도_있습니다


길을 가다가 배달 오토바이에 이런 글귀가 붙어 있는 걸 봤다. 보조석에 타고 있던 나도 운전하고 있는 남편도 많이 놀랬다. "아이가 타고 있어요." , "양보해주세요." 같은 문구는 많이 봤어도 이런 공격적인 문구는 처음이었으니까. 운전을 하던 남편은 오히려 더 기분이 나빠진 것 같았다. 나도 기분이 썩 좋진 않았다.


왜 그랬을까?

오랫동안 그 오토바이 문구가 내 머릿속에 자리 잡았다. 왜 그런 문구를 써 붙여야 했을까?


우선 생각해봐야 할 것은 그가 보통의 운전자가 아닌 배달 오토바이 기사였다는 점이다. 나이도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정도의 나이 같아 보였다. 배달업이 그리 쉬운 업종은 아닐 것이다. 늘 시간에 쫓기느라 위험하게 운전을 하기도 하고, 그러다가 차량 운전자에게 욕도 들어먹었을 수 있다. 뭔가 자신을 방어할 만한 수단이 필요하다고 느꼈겠다 싶다.


두 번째, 혹시 자신이 개가 되어야 하는 어떤 사고를 격은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모든 사람이 같은 입장에 있더라도 저런 말을 쉽게 하지는 못할 테니까. 혹시 배달을 하다가 어떤 사람에게 호되게 당해서 고생을 했거나 마음이 상했던 경험이 있다면 방어기제를 발휘해서 저렇게 표현할 수도 있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셋째, 실제로 저런 말을 절대 못 하는 사람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말을 못 하기 때문에 저렇게 붙여 놓을 수밖에 없었던 거다. 말을 너무 하고 싶지만 그래서 자신을 조금이라도 보호하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기 때문에 가시를 한껏 부풀리고 남을 대하고 있는 거다.


하지만 그는 실패했다.

나와 남편은 그 문구를 보는 즉시 기분이 상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를 해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의 말은 공격의 의사가 전혀 없는 우리들을 적으로 만드는 힘이 있었다. 그 말을 써 놓은 의도와 전혀 다르게 그의 문구는 정 반대로 작용하고 말았다.


그의 표현법을 보며 깨달은 게 있다. 분노를 표현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분명한 건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세우고 나에게 상처를 주는 너를 공격하고 말 거야 하는 표현법은 거의 100퍼센트 실패하고 만다는 것이다.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남을 적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 나는 오늘 그 단순한 사실을 한 오토바이 운전자에게서 배웠다. 내 언행에 대해서, 내 글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해볼 만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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