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키우는 삶
고백하자면 난 별다른 생각 없이 아이를 가졌다.
결혼한 지 1년쯤 되었을까. 주변에서 슬슬 아이를 가져야 하지 않겠냐 이야기들을 했다.
"응 그래야지."
이렇게 이야기를 했지만 별다른 노력은 하지 않았고 나와 남편은 행복한 신혼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내 옆에 곤히 누워 새근새근 아기처럼 자고 있는 남편의 얼굴을 보며 난 이렇게 생각했다.
'아. 이 사람을 닮은 귀여운 아이가 하나 있으면 좋겠다.'
신기했다. 얼마 안 가 아이가 생겼다. 나는 아이 낳는 일은 물론이고 아이를 키우는 일이 얼마나 큰 수고로움을 요구하는지 가늠조차 못한 채 덜컥 아이 있는 삶에 진입했다. 아이를 낳고 나서야 이 결심이 얼마나 별 생각이 없었던 것인지 알았다. 한편으로는 별 생각이 없어야 가능한 선택이었음도 알았다.
나는 꼭 실제를 경험하고 나서야 사고의 폭이 넓어지곤 했다.
20대의 나는 여자는 모두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사람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렇게 길러진 면도 없지 않았겠다 싶다. 그렇지만 오히려 내가 결혼을 하고 나서 결혼을 하지 않고 사는 삶도 괜찮겠구나 생각했다. 아이를 낳고 나서도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이 아이 없는 삶을 선택할 수도 있고, 또 그런 삶을 선택하는 것이 오히려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지려는 사려 깊은 마음에서 나오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낳아야 하는 이유를 딱 한 가지 고르자면,
그건 내 인생의 진폭을 키우는 가장 강력한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20대의 나는 내가 밥을 먹다 말고 아이의 똥을 닦아줄 수 있는 사람이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길거리에서 방지턱이라는 존재를 인지하지도 못했던 내가 방지턱에 유모차가 걸려 낑낑되는 사람이 되었다. (그제야 장애인들이 얼마나 활동하기 어려운 세상인지를 알게 되더라.) 아기를 좋아하지 않던 내가 지나가는 아이에게 손을 흔들어주며 웃어주는 사람이 되었다. 내 아이의 포근한 품에 안겨 그날의 힘듦을 잊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사람일은 참 몰랐다. 아이를 낳기 전 나의 삶의 진폭이 -3에서 +3까지였다면 아이를 낳은 후 내 감정적 체력적 상황적 진폭은 -10에서부터 +10까지로 변해버렸다.
아이를 낳아야 할까 이야기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고 나름 노력한다. 만약 아이를 가질 계획이 있다면 산전검사 정도는 미리 받는 게 좋다고 실질적인 이야기만 해준다. 이제 내 인생은 아이를 빼놓고서는 논할 수 없으므로 내 조언은 어쩌면 아무 의미도 없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안다. 아이를 낳고, 키우고, 함께 살아가는 것은 인생에 하나의 모험이라고. 그 모험으로 인해 더 힘들어지겠지만 더 행복한 순간도 반드시 찾아온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