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고민하다 나자빠져버렸다
으... 안될 것 같아 차를 바꿔야겠어.
괜찮을 줄 알았는데 안 괜찮았다. 결국 버티지 못한 내 입에서 나오고야 말았다. 차를 바꿀 시간이 됐다. 지금 우리 차는 문 두 개짜리 MINI다. 꼭 한 번 타보고 싶던 차였기도 하고, 꼭 초록색을 타고 싶다는 내 바람에 따라 단종된 매물을 수소문해가며 구했던 소중한 중고차였다. 평생 함께하자고 약속했었던 너를 이제는 보내줄 때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싣고 내리기가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예쁜 내 차가 자꾸 힘들게 느껴졌다.
새 차를 사야하나?
우리 부부는 당장 차 탐색에 나섰다. 처음 알아보았던 차는 우리가 몇 해 전부터 고민해왔던 아주 안정적인 패밀리카인 볼보 V60CC였다. 그런데 이 모델이 인기가 많고 또 우리가 노려보던 여러 가지 옵션이 들어가면 대기기간이 한없이 길어졌다. 어쩌면 2년까지도 기다려야 할지 모른다. 절망적이었다.
우리 그럼 다른 차를 보러 가볼까?
몇 주 뒤, 남편과 함께 가벼운 마음으로 BMW 매장에 들렀다. 나는 외관과 내장 디자인 정도만 봤는데 큰 차 쪽에 속하는 5 시리즈와 7 시리즈는 좀 나이 들어 보였고, 외관이 마음에 들었던 3 시리즈는 볼보 차와 같은 고급스러움이 없었다. 남편은 좀 달랐다. 자신의 드림카였던 차들을 구경하고 어쩌면 살 수 있다는 마음에 들떠보였다. 무엇보다 대기 기간이 볼보보다 길지 않았다. 3개월 정도면 출고가 된다고 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가격이 비쌌다. 남편이 원하는 모델이었던 고성능 모델은 앞자리가 8이었다.
처음에는 남편 소원을 들어준다는 생각에 덥석 차를 사라고 했다. 남편이 기뻐서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짠하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마음 한편이 왠지 모르게 계속 불안했다.
'사는 게 맞을까?'
'오래 탈 수 있을까? 질리는 건 아닐까?'
'전기차 시대가 오면 이 차는 못 탈 텐데. 중고로도 팔 수 없는 거 아닐까?'
'빚을 또 져야 하는데, 우리가 이자를 감당할 수 있을까?'
'이 차를 타고 다니면 허파에 바람이 들어서 우리 가족 씀씀이가 더 커지지 않을까?
한 2주일 정도의 시간 동안 정말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이런 생각들을 남편에게 이야기하고 또 생각을 바꾸기를 몇 날 며칠, 나는 이제 그만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 그냥 사자 사. 나도 좋은 차 한 번 타보자 그래."
그런데 남편도 마음이 편치는 않았나 보다. 직접 대출을 알아보다가 대출 이자가 오른 걸 보고는 마음에 못내 걸려했다.
"빚 때문에 이자를 갚아나가야 하면, 우리가 재테크로 수익을 본다고 해도 그 수익이 없어지더라. 마음이 좀 그랬어."
남편이 이렇게 화두를 던졌다. 남편은 화두만 던지고 곧 일상으로 돌아갔는데 내 머릿속은 그렇지 못했다. 그만 고민하자 몇 번이고 다짐했던 나는 다시 또 고민에 빠졌다. (아이고) 산책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다시 남편을 붙잡고 이야기했다.
"차를 사려고 한 이유가 아이 어린이집 등 하원이 불편해서였잖아. 그럼 우리 꼭 좋은 차를 지금 살 필요는 없을 것 같아. 미니도 더 타도 괜찮고. 그냥 좀 싼 중고차로 다시 알아보자."
조금 속상해 보이긴 했지만 남편도 금세 동의했다. 머리가 가슴을 이겼다는 명언을 남긴 채.
그날 밤, 우리는 천만 원 이하로 구매 가능하고 유지비가 적게 드는 걸 기준으로 중고차 앱을 샅샅이 뒤졌다. 적당한 QM3 차량을 찾았다. 남편의 섭섭함 방지를 위해 타고 있던 미니는 유지하기로 했다. 어쩌면 아직 미니를 보내줄 때가 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차를 한 대 더 산다는 생각에 마음이 살짝 더 들뜨기도 했다.
근 한 달간 고민을 하면서 여러 가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내 안에는 두 갈래의 마음이 있었다. YOLO를 외치는 럭셔리한 서이담, 얘는 나를 격려하면서 몇몇 차들을 계약하게끔 만들었다. 머리보다는 가슴이 앞서는 서이담이었다.
"인생 한 번이야. 그냥 하고 싶은 거 해!
"너는 그동안 충분히 수고했잖아. 그 정도는 해도 돼."
"나중에 다 늙어서 좋은 차 타면 뭐해. 그냥 지금 질러~!"
다른 서이담은 좀 이성적이었다. 그런데 살짝 찌질하기도 했다.
"인생은 한 번이지만 또 길기도 해."
"남들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보다 네 생각이 더 중요해."
"좋은 차는 좀 더 돈 모은 다음에 사도 늦지 않아. 지금은 타이밍이 안 좋아."
정말 많은 고민을 했지만 우린 아직 젊기에 조금 후에 총알을 더 모아서 차를 사기로 했다. 한 번뿐인 인생이지만 즐기면서만 살기엔 또 짧지 않은 인생이니까. 3년 뒤에는 꼭 타고 싶은 차를 사게 해 주겠노라 남편에게 약속을 했다. 그리고 그 약속만큼은 꼭 지키고 싶다. 차를 계약하는 그날 남편이 기뻐하는 모습을 꼭 보고 싶다.
길고 긴 고민이 끝났다. 마음이 너무나 시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