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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뿐인 그러나 짧지 않은 인생

한 달 고민하다 나자빠져버렸다

by 서이담


으... 안될 것 같아 차를 바꿔야겠어.


괜찮을 줄 알았는데 안 괜찮았다. 결국 버티지 못한 내 입에서 나오고야 말았다. 차를 바꿀 시간이 됐다. 지금 우리 차는 문 두 개짜리 MINI다. 꼭 한 번 타보고 싶던 차였기도 하고, 꼭 초록색을 타고 싶다는 내 바람에 따라 단종된 매물을 수소문해가며 구했던 소중한 중고차였다. 평생 함께하자고 약속했었던 너를 이제는 보내줄 때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싣고 내리기가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예쁜 내 차가 자꾸 힘들게 느껴졌다.


새 차를 사야하나?


kishan-modi-S8BdvdscVEs-unsplash.jpg Photo by Kishan Modi on Unsplash


우리 부부는 당장 차 탐색에 나섰다. 처음 알아보았던 차는 우리가 몇 해 전부터 고민해왔던 아주 안정적인 패밀리카인 볼보 V60CC였다. 그런데 이 모델이 인기가 많고 또 우리가 노려보던 여러 가지 옵션이 들어가면 대기기간이 한없이 길어졌다. 어쩌면 2년까지도 기다려야 할지 모른다. 절망적이었다.




우리 그럼 다른 차를 보러 가볼까?


몇 주 뒤, 남편과 함께 가벼운 마음으로 BMW 매장에 들렀다. 나는 외관과 내장 디자인 정도만 봤는데 큰 차 쪽에 속하는 5 시리즈와 7 시리즈는 좀 나이 들어 보였고, 외관이 마음에 들었던 3 시리즈는 볼보 차와 같은 고급스러움이 없었다. 남편은 좀 달랐다. 자신의 드림카였던 차들을 구경하고 어쩌면 살 수 있다는 마음에 들떠보였다. 무엇보다 대기 기간이 볼보보다 길지 않았다. 3개월 정도면 출고가 된다고 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가격이 비쌌다. 남편이 원하는 모델이었던 고성능 모델은 앞자리가 8이었다.


steve-ding-uUiATe16-2Y-unsplash.jpg Photo by Steve Ding on Unsplash


처음에는 남편 소원을 들어준다는 생각에 덥석 차를 사라고 했다. 남편이 기뻐서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짠하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마음 한편이 왠지 모르게 계속 불안했다.


'사는 게 맞을까?'


'오래 탈 수 있을까? 질리는 건 아닐까?'


'전기차 시대가 오면 이 차는 못 탈 텐데. 중고로도 팔 수 없는 거 아닐까?'


'빚을 또 져야 하는데, 우리가 이자를 감당할 수 있을까?'


'이 차를 타고 다니면 허파에 바람이 들어서 우리 가족 씀씀이가 더 커지지 않을까?


한 2주일 정도의 시간 동안 정말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이런 생각들을 남편에게 이야기하고 또 생각을 바꾸기를 몇 날 며칠, 나는 이제 그만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 그냥 사자 사. 나도 좋은 차 한 번 타보자 그래."




그런데 남편도 마음이 편치는 않았나 보다. 직접 대출을 알아보다가 대출 이자가 오른 걸 보고는 마음에 못내 걸려했다.


"빚 때문에 이자를 갚아나가야 하면, 우리가 재테크로 수익을 본다고 해도 그 수익이 없어지더라. 마음이 좀 그랬어."


남편이 이렇게 화두를 던졌다. 남편은 화두만 던지고 곧 일상으로 돌아갔는데 내 머릿속은 그렇지 못했다. 그만 고민하자 몇 번이고 다짐했던 나는 다시 또 고민에 빠졌다. (아이고) 산책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다시 남편을 붙잡고 이야기했다.


"차를 사려고 한 이유가 아이 어린이집 등 하원이 불편해서였잖아. 그럼 우리 꼭 좋은 차를 지금 살 필요는 없을 것 같아. 미니도 더 타도 괜찮고. 그냥 좀 싼 중고차로 다시 알아보자."


조금 속상해 보이긴 했지만 남편도 금세 동의했다. 머리가 가슴을 이겼다는 명언을 남긴 채.




그날 밤, 우리는 천만 원 이하로 구매 가능하고 유지비가 적게 드는 걸 기준으로 중고차 앱을 샅샅이 뒤졌다. 적당한 QM3 차량을 찾았다. 남편의 섭섭함 방지를 위해 타고 있던 미니는 유지하기로 했다. 어쩌면 아직 미니를 보내줄 때가 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차를 한 대 더 산다는 생각에 마음이 살짝 더 들뜨기도 했다.

20170801122903_9nZGA7w4.jpg 출처: 네이버 자동차




근 한 달간 고민을 하면서 여러 가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내 안에는 두 갈래의 마음이 있었다. YOLO를 외치는 럭셔리한 서이담, 얘는 나를 격려하면서 몇몇 차들을 계약하게끔 만들었다. 머리보다는 가슴이 앞서는 서이담이었다.


"인생 한 번이야. 그냥 하고 싶은 거 해!
"너는 그동안 충분히 수고했잖아. 그 정도는 해도 돼."
"나중에 다 늙어서 좋은 차 타면 뭐해. 그냥 지금 질러~!"


다른 서이담은 좀 이성적이었다. 그런데 살짝 찌질하기도 했다.


"인생은 한 번이지만 또 길기도 해."
"남들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보다 네 생각이 더 중요해."
"좋은 차는 좀 더 돈 모은 다음에 사도 늦지 않아. 지금은 타이밍이 안 좋아."


정말 많은 고민을 했지만 우린 아직 젊기에 조금 후에 총알을 더 모아서 차를 사기로 했다. 한 번뿐인 인생이지만 즐기면서만 살기엔 또 짧지 않은 인생이니까. 3년 뒤에는 꼭 타고 싶은 차를 사게 해 주겠노라 남편에게 약속을 했다. 그리고 그 약속만큼은 꼭 지키고 싶다. 차를 계약하는 그날 남편이 기뻐하는 모습을 꼭 보고 싶다.


길고 긴 고민이 끝났다. 마음이 너무나 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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