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방 맞고 쏙 들어간 둘째 생각
남편이 부서를 옮기고 일이 조금 바빠졌다. 업무 마무리를 하느라 집에 늦게 갈 것 같다며 남편이 콜을 했다. 아이와의 귀갓길, 길이 조금 막혔다. 최대한 빠른 길로 가려고 이리저리 골목길을 배회하며 애쓰고 있는데 아이가 이쪽 길을 가지 않았다며 짜증을 냈다.
"엄마는 운전을 잘 못해서 그렇게 좁은 길로 못 가."
설명을 해주니 조금 이해하는 듯했다. 그러다가 핸드폰에서 음악이 갑자기 나오지 않자 찡얼거리기 시작했다.
"차에서는 엄마 도와주라고 했지!"
아이에게 거의 소리치듯 이야기하고는 집에 돌아오는 내내 한 마디 말을 하지 않았다. 아이에게 좀 너무 한 건가 싶었지만 그걸 돌아보고 살필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집에 돌아오고 나서 아이는 내 무관심한 태도를 보며 뭔가가 달라졌다고 느꼈는지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아이를 적당히 혼내고 잘 화해했다.
9시쯤 남편이 집에 돌아왔다. 아이가 기뻐서 좀 흥분했다. 아빠가 택배를 뜯고 있었는데 아이가 옆에 가더니 박스 안에 내용물들을 마구 던지기 시작했다. 나는 지친 몸을 좀 쉬려 누워있었다. 내 주변으로 아이가 꺼내어 던진 완충재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
"퍽"
내 머리에 뭔가가 날아왔다. 엄청나게 무거운 택배 상자였다. 갑자기 모든 게 서글퍼졌다. 지쳐 널브러져 있는 나 자신도 서글펐다. 아이 때문에 전전긍긍하며 매일 퇴근하고도 바쁜 삶을 사는 내 모습도 초라해 보였다. 직장을 옮기고 싶지만 옮기려면 아이의 어린이집을 바꿔야 하기 때문에 적응은 잘 할 수 있을까 걱정하며 지원서조차 쓰지 못하는 나 자신도 한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뭐라도 해보겠다고 글도 쓰고, 공부도 하는 내 자신도 처절해졌다. 머리도 아팠다. 누적된 피로와 짜증이 한꺼번에 몰려와 나는 엉엉 울었다.
아이를 출산하고 다시는 아이를 낳지 않으리라 다짐했건만 가끔씩 어른들은 아이를 더 낳아야 한다고 말씀하시기도 또 지금보다 더 늦으면 터울이 져서 아이를 낳아 키우기가 더 어렵다는 말씀을 하시고는 한다. 그런데 오늘 머리를 한 대 맞으니 알았다. 하나도 힘든데 둘을? 그리고 이 과정을 다시 한번 겪으라고? 아이를 하나 더 낳으면 어떨까 라는 생각 정도는 하고 있었는데 두더지가 펀치를 맞은 듯 쏙 사라져 버렸다.
대충 계산해보니 아이를 낳으면 보호자의 인생이 5년 정도 미뤄진다. 아이 외에 세워두었던 모든 계획은 아이가 어느 정도 큰 다음에서야 가능하다. 비행기도 못 타고, 젖병이나 분유 준비를 바리바리 하고 나서야 겨우 요 앞 공원에 나갈 수 있던 그때로 나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