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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배운 입맛

커피

까맣게 태워서 전하는 위로

by 서이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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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 출근을 하면 가장 먼저 하는 게 있다. 바로 커피를 내리는 일이다. 회사에 출근하기가 너무 힘겨운 월요일에는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긴 시간을 들여 정성스레 커피를 내리곤 한다. 그렇게 긴장감과 불안한 마음으로 커피콩 자루를 들어 커피머신에 붓고, 천천히 버튼을 눌러 추출되는 갈색 액체의 고소하고 깊은 향기에 몸이 노곤하게 녹아내리는 듯한 기분이 든다. 한 모금 내린 커피를 마시면 씁쓸함과 신맛, 고소한 맛과 단 맛이 혀와 목천장을 거쳐 식도로 또르르 내려가는 기분에 조금씩 삭막한 회사 분위기에 젖어들 수 있다. 아마 나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각 층마다 마련되어 있는 탕비실과 커피머신이 그 증거 이리라.


오늘 아침, 재택근무를 하는 남편을 위해 드립 커피 한 잔을 또르르 내리면서 문득 예전에 읽었던 책 생각이 났다. <사기병>이라는 책이었다. 위암 말기인 저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그림과 글로 써 내려간 책인데, 거기서 자신을 위로해주는 사람들에 대한 만화가 있다. 저자가 위암에 걸렸다는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할 때면 사람들은 각양각색으로 반응을 한다고 했다. "어떡해 어떡해"하며 본인이 더 크게 울거나 슬퍼하는 사람도 있다고 하고, "그러게 건강 관리를 잘했어야지~"하고 꾸짖는 사람도 있단다. 믿기지는 않지만 말이다. 그중에서도 저자에게 가장 위로가 되었던 사람들은 본인이 비슷한 병에 걸려봤었던 사람들이었다고. 그분들이 별 말을 하지 않아도, 모든 걸 다 알고 있다는 그 눈빛만으로도 많은 위로와 공감을 받았다고 작가는 담담하게 고백했다.


커피를 보면서 갑자기 그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아. 커피는 자기 자신을 까맣게 태웠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위로를 줄 수 있구나.'


위암 말기였던 저자에게 비슷한 질병을 앓았던 사람들이 많은 위로를 주었던 것처럼, 커피는 자신의 상처와 아픔을 통해 지구 상의 수백만의 사람들에게 따뜻함과 위로를 전해준다. 커피가 이렇게 전 세계적인 음료가 될 수 있었던 까닭은 어쩌면 인간 삶의 본질인 고통에 가장 근접한 맛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 마법 같은 향기는 오직 희생으로만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고 커피잔 속의 씁쓸하고 고소한 커피 한 잔이 오늘 내게 말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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