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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이 바뀌고 있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갔다

by 서이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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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가 참 신기하게 딱딱 맞는다. 처서를 지나고 나니 날씨가 많이 달라졌다. 지난 주만 해도 꿉꿉하게 느껴졌던 습기 때문에 에어컨을 틀었는데 이제는 추워서 이불을 덮고, 창문을 닫고서야 잠에 들 수 있는 날씨가 되었다.


계절의 변화와 동시에 길게만 느껴졌던 휴직도 이제 끝을 바라보고 있다. 휴직을 시작했을 때는 아직 여름이 오지 않았었는데 이제는 가을이 오려고 하고 있으니 많은 시간이 지난 것 같다. 돌아보면 하고 싶은 것들도 모두 하고, 아이와 남편과 시간도 더 많이 보낼 수 있었다. 열심히 몰입해서 한 일도 있었고, 생각보다 크게 와닿지 않았던 일도 있다.


무엇보다 여행을 다녀온 걸 참 잘했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많았기 때문에 좀 더 열심히 준비할 수 있었고, 그 덕분에 현지에서 무척 풍요로운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쫓기듯 짐을 싸서 피곤함을 극복해가며 가는 여행이 아니었기 때문에 더 많은 걸 느끼고 왔지 싶다.


그리고 운동을 하고 식이요법을 해본 것도 좋은 선택이었다. 세 끼를 내 손으로 만들어 먹었기에 가능한 식단도 있었고, 하루에 두 시간 이상 운동하는 게 회사 다니면서는 정말 어려웠을 텐데 휴직 기간에 이렇게 길게 운동을 해볼 수 있었던 것도 좋았다. 가끔은 운동을 하면서 이렇게도 생각을 했었다.


"이게 진짜 럭셔리지. 나를 위해 이렇게 많은 시간을 투자할 수 있는 것."


아이와 함께 시간을 많이 보낼 수 있는 점도 좋았다. 휴직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내가 차려준 아침을 오독오독 맛있게 먹는 아이를 바라보면서, 그 씹는 소리에 참 행복했더랬다. 별 것 아니지만 내가 직장을 다니면서 허겁지겁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길 때는 느껴 보지 못했던 그런 순간이었다. 아이도 나와 함께 하는 등 하원 시간을 꽤나 좋아했던 것 같다.


계절이 변하듯 곧 내 일상도 많이 변할 거다. 그렇지만 잊지 말아야지. 이런 시간이 내게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시간 동안 충분히 행복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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