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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이담 Sep 21. 2022

이 마약을 하십시오

수리남을 보다가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넷플릭스 드라마 ‘수리남’을 봤다. 이런 누아르 물은 스토리 전개가 흥미진진하기도 하지만 히로뽕이니 코카인이니 하는 우리가 평소에 접하지 못하는 마약이 나온다는 점에서도 눈길을 많이 끄는 것 같다. 평소에도 이것저것 찾아보기를 좋아하는 남편은 드라마를 보면서 마약 종류에 대해 공부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공부한 것을 그냥 썩히긴 아까웠는지 내게 종류별 마약의 중독성과 금단증상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었다. 그런데 설명 중간에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우리 몸속에서 분비되는 여러 가지 호르몬이 있는데, 그중에서 마약보다 훨씬  강력한  있대. 혹시   알아?”


“뭐지?”


“절대 못 맞출걸?”


“그러니까 더 궁금하네”


“그건 바로 엔도르핀이야.”


엔도르핀, 그것은 힘든 운동을 하거나 출산 등 인간이 스트레스 상황에 있을 때 분비되는 호르몬으로 알려져 있다. 엔도르핀은 체내 모르핀이라는 뜻을 가진다는데 실제 모르핀보다 통증을 억제하는 효과가 800배 이상 높다고 한다. 인간이 만들어내는 어떤 마약보다도 더 강력하다는 사실이 정말 신기하다.


지난주 운동을 하다가 삐끗해서 목이 계속 뻐근했다.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았다.


“뭐 크게 문제 생긴 건 아니겠죠? 뼈라던가, 디스크라던가.”


“어우 아니에요. 그러면 앉아 계시지도 못해요.”


“그렇구나.. 그럼 운동은 상체 운동만 안 하면 되는 거예요?”


“아니요. 하체 운동도 되도록 하지 마시고, 무게 드는 것도 안돼요.”


“러닝은요?”


“러닝도 안되죠. 뛰면서 목에 무리가 갈 수 있잖아요.”


“할 수 있는 운동이 그럼 아예 없나요?”


“운동 매일 하시는 분들은 하루만 안 해도 죽을 것처럼 하시는데, 안 죽어요. 일주일 정도 푹 쉬시는 게 몸엔 제일 좋아요.”


의사와 이런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나 자신이 좀 웃기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몇 달 전만 해도 하루에 10분 운동하는 것도 귀찮고 버거워했는데 운동을 못한다고 호들갑을 떨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다니. 참 놀라운 변화다.


그런데 남편이 운동을 하면 내 몸속에서 최강의 마약인 엔도르핀이 돌 수 있다고 알려주니 내가 왜 이렇게 운동을 좋아하게 되었는지를 알 것 같다. 운동을 처음 시작하긴 힘들지만 끝나고 나서의 그 쾌감 때문이다. 다 해냈다는 성취감과 함께 뭔가 시원하고 기분 좋은 느낌이 내 몸속에 가득했는데 그 정체 중 하나가 ‘엔도르핀’이라는 걸 알게 되니 뭔가 돈 벌었다는 느낌이 든다.


‘나는 합법적 마약을 꾸준히 하는 사람이야. 후훗.’


얼른 운동을 다시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좋은 호르몬도 호르몬이지만 이 계절을 놓치는 게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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