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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이담 Oct 31. 2022

예쁜 똥들의 똥을 치운다

똥은 똥을 낳고

“소담이가 애기가 어디서 나오는 지 알려줬어.”


“그래? 애기가 어디서 나오는데?”


“엄마 똥구멍에서 나온대!”


“정말? 그럼 재민이랑 소담이 둘 다 똥인거네?”


“아니야!!!“


유치원에 다녀온 아이가 화장실에서 내게 일급 비밀을 폭로했다. 그것은 아이가 똥구멍에서 나온다는 사실이었다. 아이가 요즘들어 아기는 어떻게 생기는지, 어떻게 태어나는지를 꽤나 궁금해했는데 아이의 친구도 그랬던 것 같다. ‘똥구멍에서 아이가 나온다.’라고 말할 수 밖에 없었던 친구 엄마의 모습이 상상이 되면서 그 순간의 순발력과 처절함이 이렇게 충격적으로 표현되었구나 생각하니 웃음이 났다. 그리고 그 덕분에 아이와 말장난을 칠 수 있었다.


똥, 그것은 인간의 가장 지저분하고 비위 상하는 산물이다.


한 회사 동료는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전 비위가 약해서 제 똥도 못봐요. 일을 보고 나면 황급히 변기 뚜껑을 닫고 물을 내려야 해요.”


이 동료 뿐만이 아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똥에 가까이 가기를 싫어할 것이다. 그래서 인류는 똥을 치우기 위해 하수도라는 위대한 발명품을 만들어 냈고, 그것이 인류의 발달과도 직결될 정도다.


나도 그랬다.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나 아닌 다른 사람의 똥을 치우는 일을 상상조차 한 적이 없었다. 아이를 낳고 난 후 초보 엄마에게 떨어진 일이 바로 아이의 변을 치우는 일이었다. 다행히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모유나 분유만을 먹었기 때문에 냄새가 역하지 않았다. 하지만 배출을 확인하고, 배설물을 닦아내고, 그것을 모아 배출하는 작업은 엄마가 처음 된 내게는 굉장히 생소했다. 몇백 번의 기저귀 갈이를 통해 똥을 치우는 행위가 조금씩 익숙해 질 때쯤 아이는 사람다운 음식을 섭취하기 시작했고, 그 후로부터는 똥냄새가 어른처럼 나게 되었다. 다행히 기계처럼 기저귀를 갈 수 있는 스킬이 생기자 이 모든 것들이 신기하게 괜찮아졌다.


똥을 치우는 일, 인간의 몸에서 나올 수 있는 가장 더러운 배설물을 대신 처리하는 일이다. 남의 똥을 태연하게 치울 수 있게 되면서부터 나는 성장했다. 인간의 가장 더러운 부분을 수용할 수 있으니 말이다.


좀 더 나아가서 우리는 우리의 똥을 다른 사람에게 위탁하면서 자라나고, 혼자 설 수 있게 되면서부터는 똥을 스스로 치운다. 그리고 완전히 성장해 누군가의 삶을 책임질 준비가 되면 가장 작은 사람의 똥을 치우게 되고, 이런 훈련과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의 똥을 처리했었던 이전에는 강했지만 지금은 많이 약해진 자들의 똥을 치우며 산다. 그리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우리의 똥을 다른 사람에게 위탁하며 생을 마감한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정말 똥인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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