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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이담 Nov 16. 2022

순서가 다르다

주는 대로 받는 것이 아닌 받는 대로 주는 것

내가 아직 혈기왕성했던 20대, 나는 1 더하기 1은 2라는 법칙을 인생 어디에나 적용하는 사람이었다.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주거나 베풀고 나면 꼭 그만큼 받기를 바랐지만, 그대로 받는 일은 아주 드물었기 때문에 또 많이 실망하고 슬퍼했었다. 언젠가는 이런 마음을 엄마한테 이야기했다.


“엄마~ 사람들은 다 왜 그런 거야? 왜 똑같이 보답을 하지 않는 거야?”


“그건 말이지. 인생을 살아보니까 꼭 이 사람에게 베푼 게 이 사람에게서 돌아오는 게 아니더라고. 이 사람에게 베풀었던 일이 다른 사람에게서 돌아오기도 해. 가끔은 더 크게 돌아오기도 하지. 그래서 포기하지 말고 계속 그런 마음으로 사람들을 대해야 해.”


당시에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엄마가 이야기했던 ‘되돌아옴’을 몇 번인가 느낀 후로는 그 말이 진리라고 느껴졌다. 알고 보면 누구보다도 계산적인 사람인 나는 후일의 보답을 생각지 않고 베푸는 일을 마음먹고 한 번 해보기로 했다. 누군가에게 베풀고 싶은 마음이 들 때는 어떤 핑계를 대지 않고 베풀어야겠다 마음을 먹었다.


어느 날은 엄마가 우리 집에 오셨다가 우리 집 냉장고를 보시더니 마트에 가자고 하셨다. 그래서 마트에 가서 필요한 물품을 한가득 골랐다. ‘아직도 부모에게 이렇게나 받는구나, 참 감사하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오신지 몇 주 뒤에 후배 하나가 우리 집에 놀러 왔다. 참 예쁜 후배여서 이것저것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밥도 같이 먹고, 차도 마시고, 집에 가는 길에 후배의 친언니와 먹으라고 마트에 들러서 밀키트 몇 개와 간식거리도 사서 들려 보냈다. 후배가 눈이 휘둥그레졌다. 밥을 먹고 차를 마시는 것 까지는 예상했는데, 장을 봐서 들려 보내는 게 생소했나 보다. 손사래 치는 친구에게 마트 봉다리를 안기고는 뒤돌아 걸어가는데 기분이 참 좋았다. 하나도 아깝지가 않았다.


그리고 또 몇 주 후, 할머니가 우리 집에 왔다. 그리고 꼭 엄마처럼 근처 마트에 가서 과일이며 고기며 한가득 사서 내게 안겨 주셨다. 집에 돌아와서 할머니가 사주신 식료품으로 저녁 준비를 하고 있는데 퍼뜩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내게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주면 다른 누군가가 그걸 돌려준다고 했다. 주는 행위가 먼저 있고 나서 되돌려 받는다는 거였다. 그런데 엄마와 할머니의 일을 겪고 나니 생각이 바뀌었다. 후배에게 장을 봐줄 수 있었던 것은 내가 그런 일을 경험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엄마도 누군가에게 그런 경험을 받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나는 무언가를 남에게 베풀었기 때문에 그 인과관계에 따라서 받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누군가에게 먼저 받았기 때문에 주는 방법을 알게 되었고, 베풀며 느끼는 즐거움도 모두 그들에게서 배웠던 것이다. 배려와 호의는 대대손손 그렇게 내려오는 거였다.


앞으로도 할 수 있는 한 기분 좋을 만큼 나눠야겠다 다짐한다. 내 아이도 할머니와 엄마를 보는 내가 그랬듯 나를 보며 세상을 살아갈 방법을 깨닫게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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