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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이담 Dec 26. 2022

띠딕, 45,030원

그와 나의 교통카드 잔고

“띠딕”, “띠띡”, “띡!”


아침마다 집에서 조금 떨어진 지하철역까지 버스를 타고 간다. 이른 아침 새벽의 군상은 약간은 피곤하고, 살짝 결의 같은 것이 보이며, 대개는 분주하다. 버스를 놓치지 않기 위해, 이번에 곧 도착하는 지하철을 타기 위해, 출근 시간에 늦지 않게 도착하기 위해 사람들은 모두 약간씩은 지친 모습으로 달리거나 빠르게 걷는다. 매일매일 계속되는 이 광경을 나는 대개는 ‘아! 눈앞에서 놓쳤네.’ 라든가 ‘오늘은 운 좋게 내가 도착하자마자 왔네!’ 라든가, ‘아.. 오늘은 결국 늦겠군.’과 같은 류의 생각만을 하면서 아무 생각 없이 유튜브를 보곤 한다.

사실을 말하자면 핸드폰 스크린타임이라는 어플이 알려준 내 핸드폰 사용 시간이 너무 충격적이었다. 아니 이렇게 많은 시간을, 도대체 어떻게 핸드폰을 붙잡고 살아간다는 건가? 특히 요즘 들어 유튜브 시청이 늘었다고 했다. 어쩐지 눈이 뻑뻑하고 피곤하더라. 그래서 오늘은 오랜만에 출근길에 핸드폰 대신 책을 쥐어보기로 했다. 운 좋게도(?)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자마자 휙 지나가는 만원 버스를 보았고, 한 3분쯤 기다려 다음 버스를 타게 되었다. 앞에 지나간 버스가 사람을  가득가득 태워서인지 버스엔 드문 드문 자리가 보였고, 먼저 간 버스를 보고 나서 줄을 서게 된 내가 꽤 앞쪽에 있었기 때문에 운 좋게도 아침 시간에 앉아서 가는 호사를 누리게 되었다.


‘오~~ 럭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집에서 가져온 책을 읽었다. 쉽고 짤막짤막하게 쓰여 있어서 7분 남짓한 시간 동안 한 챕터 정도를 읽을 수 있었다. 머지않아 내가 내릴 지하철역이 가까워 왔다. 버스 카드를 태깅하는 곳에 버스카드를 찍으려고 앞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잠깐 틈이 나서 손을 쑥 넣어 내 지갑을 슬쩍 카드 찍는 곳에 댔다.


“감사합니다.”


하고 버스카드 태깅장치가 말했다. 그리고 내가 이번달 동안 썼던 4만 원 남짓 한 누적 사용금액을 보여주었다.


‘이번에는 4만 원이 조금 넘게 나왔군. 생각보다 적구만!’


여유롭게도 이런 생각을 하면서 내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몇 초 뒤, 다음 사람이 버스 카드를 찍었다.


“감사합니다.”


기계가 사람같이 말을 내뱉었다. 그 사람의 잔액도 나와 비슷한 4만 원 언저리였다. 평소 같았으면 눈에 들지도 못했을 그 숫자가 오늘은 내 마음에 쿡 박혔다. 분명 이름도 모르는 사람이다. 무심코 그가 교통카드를 한 달 동안 누적으로 4만 원 남짓 쓴다는 것을 본 것이다. 그걸 본 나는 그가 이 이른 아침시간에 버스를 타고 졸린 눈을 비비며 출퇴근을 하는 직장인임을 짐작했다. 나처럼 말이다. 알게 모르게 그 사람에 대한 짠한 마음과 동질감이 밀려왔다. 오늘은 마음속으로나마 한 번 오지랖 오바세바를 해보기로 했다.


“열심히 살고 있군요. 당신의 하루를 응원합니다.”


들리진 않을 마음속 작은 소리로 그의 하루의 행운을 바라봤다. 그러면서 오늘 아침 이렇게 문득 내게 찾아왔던 따뜻한 마음들이 오늘 하루에도 가득하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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