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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이담 Mar 20. 2023

자아가 생기는 나이, 미운 n살

아이의 고집과, 나의 대처와, 그리고 결국 우는 아이를 보면서 나를 본다

“미운 일곱 살”


다들 미운 네 살, 미운 일곱 살이라는 말을 할 때 ‘정말일까?’ 했는데 정말이다. 가끔은 절망이다. 아이는 이제 엄마가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어떤 방향을 정하고, 그걸 쉬이 굽히려고 하지 않는다. ‘자기가 옳다.’라는 확신도 상당히 크게 가지고 있다. 내가 미운 일곱 살 엄마가 되면 아이에게 시행착오를 경험해주게 해야지 하고 호기롭게 생각했건만, 막상 눈앞에서 잘못된 길 혹은 비효율적인 길로 가려는 아이를 보고 있자면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을 내뱉게 된다.


“안돼!!!”


아이는 삐죽이며 나를 본다. 좀 약했을 때 말이다. 만약 내가 말을 조금 심하게 했거나 언성이 조금이라도 높았다 치면 아이는 여지없이 삐진다. 그리고 높은 확률로 눈물을 흘린다. 그럴 때는 나도 화를 좀 식히고 나서 아이에게 다가가야 한다.


“재민아, 엄마가 미안해. 엄마 목소리가 커서 많이 놀랐지?”


“응.. 내가 모르고 그런 건데…(혹은 실수로 그런 건데)“


“그래. 모르고 그랬을 거야. 그래도 위험하니까(혹은 남에게 피해를 주니까) 다음부터는 그러면 안돼. 알았지?”


“(한번 더 입술을 삐죽 내밀며) 응 알겠어.”


이렇게 아이를 어르고 달래고 나서야 이 긴장감이 해소되곤 한다. 이런 일들이 매일, 몇 번씩 반복된다. 오 마이갓.


그런데 말이다. 이런 아이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자면 흠칫 놀라게 된다. 아이의 모습이 꼭 어른인 나와도 비슷하기 때문이다. 나도 고집이 워낙 센 편이라 내 뜻대로 뭔가를 해내고 싶은 마음이 크다. 그런데 사회생활이란 게,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그럴 때마다 난 지치지도 않는지 화가 난다. 가끔은 눈물도 난다. 이렇게 아이를 키우면서 화를 내거나 눈물을 흘리는 아이를 보고 있자니, 문득 나도 다른 사람의 눈에는 이런 모습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울음을 그치고 엄마가 이야기해 준 대로 행동하는 아이에게 꾹 참고 잘 해냈다고 칭찬하며 간식을 줬다. 아이는 순식간에 발랄해졌다. 나도 나에게 그래야겠다.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꾹 참고 잘 버티고 있는 내게 작은 상을 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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