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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이담 Mar 27. 2023

들기름 막국수를 아이에게 맛 보여주려다가

아이에게 말을 하다가 깨달은 것


며칠 전 유명한 백화점 식품 코너에 갔다가 맛있게 먹었던 들기름 막국수 밀키트를 발견했다.


“이런 게 있네? 가족들이랑 같이 먹어야겠다.”


들기름 막국수 말고도 여러 가지 재미있는 식재료들이 많았고, 나는 적지 않은 식재료들을 담아서 계산대에 올렸다. 몇 가지는 뺄까 생각도 했지만, 한 번 경험해 보자 하는 생각에 꾸역꾸역 집으로 가져왔다. 먼 길이었고 무겁기도 했지만 보람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며칠 후, 가족들과 함께 들기름 막국수를 먹을 기회가 왔다. 지난번 식당에서 잘 먹었던 기억이 있기에, 맛있겠지 하는 기대감으로 설명서를 열심히 보면서 메밀면을 삶고, 들기름과 양념간장에 국수를 비비고, 김가루와 깨소금을 솔솔 뿌려서 국수를 완성했다.


“짜잔!”


아이는 잠깐 그림을 그린 뒤 먹겠다고 해서 우선 우리 부부가 국수를 맛봤다. 맛있었다. 고소하고 심심한 맛이었다. 유명한 식당의 맛과 정확히 같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흡사한 맛이었다. 집에서 맛을 냈는데 이 정도면 훌륭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 같았다.


“재민아~이제 국수 먹어야지!”


아이를 식탁에 앉히고 국수를 먹여 보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아이가 국수를 맛도 보지 않으려고 했다. 수북이 올려진 김가루 때문에 맛이 없게 보였나 보다. 아이를 설득했다.


“재민아! 국수 한 입 먹어봐.”


“싫어~”


“일단 먹어 보고 맛이 없으면 먹지 않아도 돼.”


이렇게 말하는데 문득 뭔가가 퍼뜩 스치고 지나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사실 요즘 고민이 있었다. 내 뜻과 상대방의 뜻이 서로 달라서 생긴 고민이었다. 나는 이 쪽으로 가려고 했는데, 다른 사람은 저 쪽으로 가라고 했다. 내 주변 사람들도 다 저 쪽으로 가면 힘들다며 내 선택을 지지해 주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결국 내 뜻과는 반대로 결정해야만 했다. 억울하기도 하고 분하기도 했다. 자괴감도 들고 무력감도 들었다. 그러던 와중에 아이에게 이런 말을 내가 했던 거다. 일단 경험해 보고 싫은지 아닌지를 판단하라고 말이다. 나는 내 뜻과 다르다는 것만으로 상대방의 말을 듣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인생이 내 뜻대로 되는 일이 있었던가. 그리고 어떤 때는 내 선택이 맞았지만, 내 선택이 틀릴 때도 많지 않았던가. 그걸 알면서도 고집을 부리고 내 자신을 스스로 괴롭혔던 걸 돌아보게 됐다.


‘그래 한 번 해보지 뭐. 해보고 나서 고민해 보는 거다.’


이렇게 마음을 고쳐 먹었다. 아이에게 들기름 막국수를 맛 보여주려다가 이런 생각도 한다. 아이처럼 굴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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