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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이담 Apr 07. 2023

워라밸과 기브앤 테이크

중요한 한 가지를 위해 포기해야 할 열 가지

코로나가 심해질 무렵 회사에서 자율 출퇴근제를 한 덕분에 아이를 봐주시는 분이 없는 상태인 우리 부부도 아이를 유치원에 보낼 마음을 먹게 되었다. 남편은 10시에 출근을 하기로 하고 아이 등원을 맡았고, 나는 조금 일찍 출근했다가 5시에 퇴근을 해서 아이 하원을 시켰다. 코로나 상황이 어느 정도 안정된 이후까지도 이런 시차출퇴근제가 지속되었기에 1년 넘게 이렇게 아이와 함께 출퇴근하는 생활을 계속해 올 수 있었다.


그런데 얼마 전 내가 팀을 새로 옮겨야 하는 상황이 되었고, 새로 옮기는 부서에는 시차출퇴근제를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이 하원시간을 제대로 지킬 수 있을지, 혹시 급하게 사람을 구해야 하는 건 아닐지, 구한 사람이 이상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등 걱정이 많아졌다. 걱정을 너무 하다 보니 공포감까지 생길 지경이었다. 이런저런 사람들과 이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부서장에게 내 상황을 꼭 언급해야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래서 팀을 옮기기 전 부서장에게 내 상황을 설명했고, 팀을 옮기고 나서도 이런 상황을 팀 사람들과 팀장에게 공유를 해 두었다. 그런데 막상 출근을 하고 보니 아무도 퇴근하지 않고 있는 사무실에서 “안녕히 계세요.”라는 말을 하고 퇴근을 한다는 게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그날도 5시에 힘겹게(?) 퇴근을 하고 아이를 데리고 집에 돌아와 밥을 먹이고 이런저런 뒤치다꺼리를 하고 좀 쉬자 하며 텔레비전을 켰다. 반갑게도 유퀴즈온 더블록이라는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있었다. 여러 사람이 나와 인터뷰를 하는 프로그램인데 그날은 성시경이 나왔다.


“어르신들이 하셨던 말인데 자기가 정말 소중하게 생각하는 한 가지를 위해서는 열 가지를 포기해야 한다고. 그 말이 요즘 참 와닿아요.”


요즘은 유튜브를 하면서 ‘국밥부장관(국밥을 너무 맛깔나게 먹으면서 설명해 준다고 붙여진 별명)’으로 불리고 있는 그였다. 그가 노래하는 일이 가장 좋다면서 그 일을 위해 여러 가지들을 감수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평소에는 술을 즐기는 그도 콘서트를 앞두고서는 한 달간 금주를 한다고 했다. 노래를 불러야 할 일이 있으면 절대 술을 마시지 않는다고 했다. 유튜브에서 늘 국밥에 소주 한 잔을 곁들이던 그의 모습을 봤기에 그가 얼마나 노래를 사랑하는지가 절실하게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그런데 인터뷰를 듣다 보니 뭔가 생각 나는 게 있었다. 바로 내 회사생활이었다.


나는 이른 퇴근을 얻어낼 생각만 했지 내가 그것을 위해 기꺼이 포기해야 할 것들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정말 소중한 것, 지켜야 하는 것 한 가지를 위해서는 내가 즐겁게 여기고 있는 열 가지를 포기해야 한다는 게 옛 어르신들의 지론이었다. 그렇다면 내가 포기해야 할 것들은 무엇이었을까. 나에 대해 윗사람들이나 동료들이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고민해 보았다. 그것은 바로퇴근 전까지의 내 시간이었다.


다음 날이 되었다. 출근을 하고 이런저런 업무적인 이야기를 하다가 팀장이 다른 곳으로 외근을 나갈 일이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굳이 갈 필요는 없었지만 나도 같이 가면 좋을 것 같다는 그의 말에 기꺼이 가겠노라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오는 일정도 가서 하는 일도 모두 팀장의 지시를 따랐다. 외근을 갔다 오니 밥을 먹고 차를 마시는 시간도 짧았다. 사무실에 도착하니 점심시간이 아직 20분이 남은 시간이었다. 재정비를 한 뒤 일을 시작했다. 다섯 시 이전의 내 모든 시간은 회사의 것이라고 생각을 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이 날은 오후 4시에 회의가 잡혀 있었다. 원래는 5시에 끝나는 일정이었는데 갑자기 팀장이 6시까지 회의 시간을 연장해 달라고 요청했다. 한참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고 가고 있던 5시 3분쯤, 내가 살짝 조용해진 틈을 타서 이렇게 말했다.


“저어…죄송한데 지금 가봐야 할 것 같아서요. 죄송합니다.”


“어어.. 얼른 가봐요.”


“내일 뵐게요!”


순식간에 짐을 정리하고 회사를 나왔다. 마음 한 구석이 살짝 찜찜한 건 있었지만 어제의 성시경을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5시 전까지의 내 시간을 모두 주고 대신 내가 얻어낸 것이다.’라고 되뇌며 가볍게 발걸음을 내디뎠다. 곧 회사가 잊혔다.


주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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