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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이담 May 15. 2023

모르는 사람에게 맡기는 게 상식

신기하다 여기, 이 세상

아이와의 병원 나들이는 늘 정신이 없다. 아이도 챙겨야 하고, 병원 진료도 받아야 하고, 약도 타야 하고, 부랴부랴 집에 가서 밥도 먹여야 한다. 이런 모든 순서들이 이제는 꽤 익숙해질 때도 되었건만 의도치 않은 상황을 만나면 언제나 당황하게 된다.


오늘은 병원에 갔다가 약을 타서 나오는데 내 차 앞에 다른 차가 막 주차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학원차가 비어있던 내 옆자리에 주차를 하려고 하고 있었다. 우선 뒷 차 차주분께 내가 곧 나갈 거라 차를 좀 빼달라고 말씀드린 후 재빠르게 아이를 차에 태웠다. 아이를 태우고 꾸역꾸역 5 점식 벨트를 채워주고 나서 자리에 앉았는데 꽤나 큰 학원버스가 내 옆 자리에 주차를 했다. 학원버스 주차가 끝나길 기다렸다가 차를 빼려고 하는데 학원버스가 워낙 크다 보니 공간이 별로 없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버스 아저씨가 내려서 그 사이 틈으로 달려 나가시는 게 아닌가?


‘뭐 하시는 거지? 그러다 끼이면 위험한데?’


일단정지하고 기다렸다. 아저씨는 내 차 뒤로 가시더니 수신호를 보내셨다.


“오라이~오라이~~”


그리고 핸들을 꺾으라고 하셨다. 핸들을 꺾자 차를 돌릴 공간이 나왔다. 아저씨의 도움으로 나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차를 돌려 나올 수 있게 되었다. 내 차 뒤에 차를 대려고 했던 차주에게도 덜 미안해졌다. 창문을 내리고 아저씨께 인사를 드렸다.


“감사해요!!”


이렇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돌아 나오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방금 나는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내 차와 차에 탄 사람들의 생명을 맡기는 일을 한 셈이 아닌가? 만약 이 아저씨가 내게 악의적으로 굴었다면, 혹은 내가 이 아저씨를 백 퍼센트 믿지 않고 다르게 운전했다면 사고가 날 수도 있었던 거다. 하지만 나는 아무 의심 없이 아저씨를 믿었고, 아저씨도 아무 대가를 바라지 않고 나를 도왔다. 이게 아무렇지 않다고? 이런 호의가? 이런 믿음이?


아직은 살만한 세상인가 보다. 이런 예상치 못한 도움과 믿음이 상식이고 보편인 세상에서 계속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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