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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이담 Jun 21. 2023

헐크가 된 나

내가 이럴 수도 있다고?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


지난주, 아이가 급성 편도선염에 걸렸다. 열이 오르락내리락하고 있길래 남편이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다녀왔다. 그리고 얼마 후 내게 전화가 왔다.


“재민이가 좀 기운이 없네.”


“열이 좀 높은가 본데? 열한 번 재볼래요?”


“엇, 40도다!”


“얼른 해열제 먹이자. 처방받아왔죠?”


“응. 알았어 끊어요~”


남편은 다급하게 아이에게 처방받은 해열제를 먹였다. 그리고는 전화가 왔다.


“해열제를 한통을 받았는데 보니까 한 통을 다 먹여야 하네. 약국에 들러서 해열제 좀 사 올래요?”


갸웃했다. 한 통을 다 먹였다고? 그런데 처방이 그렇다니 그렇겠지 싶었다. 그래서 약국에 들러서 같은 이름의 해열제 두 통을 사서 집으로 돌아갔다. 아이는 열이 조금 내려서 진정이 된 상태였다. 다 먹인 해열제 통을 보았는데, 양이 상당히 많아 보였다. 신기하게도 약국에서 붙여준 처방 스티커에 한 통인 50ml를 1회에 먹이라는 지침이 쓰여 있었다. 왠지 이상해서 약 통에 붙어있는 설명을 자세히 읽어 보았다. 그랬는데 이런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30kg 미만 아이는 하루 최대 25ml 이상 복용할 수 없습니다.


갑자기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이게 무슨 소리지? 이 약 한 통이 50ml인데, 그럼 아이가 하루 최대 먹을 양의 2배를 먹었다는 건가?’


병원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간호사가 전화를 받았다. 간호사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처방전에 50ml를 먹이라고 되어 있었는데, 그게 맞냐고. 약통에 붙어있는 권장량과 차이가 너무 크게 난다고 확인을 해달라고 했다. 간호사는 상황을 확인해 보고 전화를 줄 테니 잠시 기다리라고 했다. 전화를 끊고 약국으로도 전화를 걸었다. 약국 전화는 통화 중이었다. 아무래도 병원과 통화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안 좋은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 조금 후 의사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어머니 전화하셨죠. 아니 어떻게 50ml를 다 먹이셨어요?”


“아니 그렇게 여기 쓰여있잖아요.”


“아니 그 용량을 먹이면 안 된다는 것도 모르셨어요?”


“그러면 1회 용량을 정확히 써 주셨어야죠. 애가 40도가 넘어가는데 약통 설명서를 하나하나 읽어볼 사람이 어디 있어요?”


“약국에서 보통 1회 먹을 양을 다시 써준다고 하는데, 이번에는 그걸 놓친 것 같다고 말을 하더라고요.”


“그럼 의사 선생님이라도 제대로 처방을 하셨어야죠!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


흥분을 참지 못하고 소리를 빽 질렀다. 보다 못한 남편이 내 전화를 가져가서는 의사와 통화를 이어갔다. 사실 벌어진 일을 되돌릴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되돌릴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의사의 잘못된 처방에, 약사의 무성의함 때문에 아이가 정량의 6배가 넘는 양의 해열제 한통을 다 먹고 말았다는 사실이 나를 분노케 했다. 남편이 차분히 통화를 이어 나가더니 일단 아이가 너무 저체온이 되지 않는지를 잘 살펴보라고 했다며 잘 지켜보자는 이야기를 했다. 다행히 아이의 체온이 더 떨어지진 않았다. 정상 온도를 조금 유지하자 아이 상태도 많이 좋아졌다.


8시쯤 되자 다시 의사에게서 전화가 왔다. 해열제에 대해 조금 더 공부를 해본 것 같았다. 체내에서 2시간 정도면 약효가 반감이 된다며 2시간 정도 아무런 이상이 없었으면 이제 안심을 해도 좋다는 이야기를 했고, 혹시 이상이 생길 경우는 어떻게 대처하라는 이야기도 해주었다. 안심이 됐다. 그리고 의사가 이만큼 대처를 했으니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마음이 누그러졌다.


아이가 아픈 상황에서 나는 전혀 이성적이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그다음 날 멀쩡한 척 회사에 출근하고 할 일을 했다. 지난밤만 해도 소리를 치고 울고불고했던 나인데 말이다. 인정했다. 나는 그렇게 이성적이지 못한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럴 수도 있다.


그러니 남이 이상한 행동을 한다고 해서 너무 나무라지만은 말아야겠다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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