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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이담 Jun 27. 2023

에라 모르겠다

뜻밖의 휴가

부서를 옮기고 내가 하는 일은 주로 ‘일정’을 맞추는 일이다. 일정이 곧 성과이기 때문에 일정을 맞추기 위해 유관부서와 조율을 하고, 방법을 찾아내고, 그리고 여러 사람들을 달콤한 말과 매콤한 메일 같은 것으로 ‘쪼고 ‘ 있다. 요 몇 주 일이 빡빡하게 돌아가고 있어서일까 아니면 아이가 아파서일까 작은 혓바늘이 났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잘 쉬었어야 했던 것 같다.


‘힘들긴 힘든가 보다.’


하고 알보칠을 콕 찍어 바르며 출근을 했다. 그리고 혓바늘과 아이가 다 나을 무렵 감기에 걸렸다.


“목이 조금 따갑네. 병원 갔다가 갈게요. “


아이 하원을 남편에게 부탁하고는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았다. 보통이면 약을 하루 이틀 정도 먹으면 증상이 나아졌었는데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증상이 약해지기는 커녕 계속되고 심해지는 것이 아닌가. 감기로 콜록이던 주말, 남편과 아이와 만족스러운 저녁을 먹었다. 남편은 배도 부르니 조금 멀긴 하지만 한강에 나가 산책을 가자고 제안을 했다. 마음 한편에 한강까지 가서 산책을 하면 몸이 더 안 좋아질 것 같다는 직감이 들었다. 신난 남편에게 찬물을 끼얹어야 했다.


“남편, 근데 나 사실 몸이 많이 안 좋은 것 같아. 한강은 무리일 것 같네. “


“그래? 되게 길게 간다 이번 감기. 이상하네. 코로나 검사라도 한 번 해볼까?”


“아…그 생각을 못했네.”


안일했다. 작년 4월 코로나를 한 번 앓고는 나름의 면역력이 생겼다고 자만했다. 남편 말에 일리가 있었다. 지난번보다 약해지긴 했지만 증상이 비슷했다. 집으로 얼른 돌아와 때때묵은 코로나 키트를 꺼냈다. 면봉으로 조심스레 코를 후비고 키트에 용액을 뿌리고 잠깐 기다렸다. 뚜렷한 두 줄이 나왔다.


“하… 양성이네.”


처음에는 회사에서 휴가를 받을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막상 월요일이 되자 마음이 바빠졌다. 회사에 코로나 증명서도 내야 하고, 오늘 하려고 했던 일들도 체크하고, 부랴부랴 팀원들에게 일을 부탁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지난주에 이번 주 계획을 세울 때 분명 오늘이면 다 될 거라고 생각했던 일들 중 단 한 가지의 일도 제대로 처리되지 않았다. 오늘 복귀하기로 되어 있었던 사람은 오지 않았고, 보고를 받은 상사는 보고 내용을 의심했다. 그리고 결정을 다른 날로 미뤘다. 참 이상하다고. 오늘 다 될 줄 알았던 일이 다 미뤄진다고 같이 일하는 동료에게 이야기를 했는데, 그가 이렇게 말했다.


“이게 운명인가 봐요.”


운명이란 얄궂게도 내가 서두를 땐 진척이 더욱 더디다. ‘좀 더 빨리!’라고 마음속으로 외치다가 일을 더욱 그르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만 하고 놓아버렸다. 어차피 나는 지금 휴가 중 아니던가. 에잇 그냥 지금을 즐기자. 될 일은 되고, 말 일은 말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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