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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이담 Nov 20. 2023

내 그림 한 켠을 나누어 줄게

풍성한 그림을 위한 양보

"아이가 있는 사람들은 행복해지기가 참 쉬워요. 아이가 잠깐 없는 시간이 있으면 되거든요."


몇년 전 육아 선배 하나가 이런 말을 했을 때 참 크게 공감을 했었다. 그 때는 또 아이가 더 어리기도 해서 육아가 버거워서 더 그랬나보다. 그리고 지금, 아이가 아파서 유치원 등원이 어려워 친정집에 맡기고는 한 며칠 나도 그런 해방감을 느꼈다.


'와. 우리집이 이렇게 깨끗했었나.'


'이렇게 조용했었나.'


'내가 이런 시간까지 날 위해서 쓸 수 있다고?'


아이가 없었을 땐 당연했었던 것들이 내겐 아주 멀게만 느껴졌었는데 잠시나마 딩크족의 편안함을 느꼈다. 그리고 하루 또 이틀이 지났다.


느즈막히 넷플릭스로 드라마를 보았다. 아주 길게 인터넷도 뒤적거렸다. 먹고 싶은 음식을 먹고, 직장에서 돌아와서는 쓰고 싶은 대로 시간을 썼다. 뭔가 허전했다.


'왜일까.'


쓰레기를 버리다가 아이가 그린 그림이 하나 툭 떨어졌다. 그림 속 캐릭터의 얼굴이 아이를 닮았다. 비뚤거리는 선과 표정, 귀여운 색채를 보니 픽 웃음이 났다.


내 시간을 내 색으로만 칠하면 단정하고 깔끔했다. 하지만 다채로워질 수는 없었다. 내 색을 칠할 공간 한 켠을 툭 떼어 남편의 색과 아이의 색, 그들의 움직임을 입혔을 때 오히려 더 풍성한 그림이 되었던 거다.


"보고싶다. 재민아~"


오늘도 이렇게 쓸쓸한 마음이 들면 아이에게 영상 통화를 건다. 이 시간이 영원하지 않으리란 걸 안다. 그리고 이렇게 떨어져 있는 시간이 있기 때문에 이런 생각도 할 수 있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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