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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위 1% 남편

결혼 후 긁어보니 꽤 괜찮은 복권

by 서이담

“내가 육아휴직 끝나고 복귀할 때 당신도 육아휴직을 해보면 어때?”


아이를 낳고 내가 육아휴직을 하면서 아이를 돌볼 때였다. 나는 이 경험을 하면서 남편도 육아휴직을 해봤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먼저는 아이와 이렇게 살을 부대끼며 지낼 시간이 아주 짧을 텐데 그 시기에 아이와 남편이 유대감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두 번째는 내가 복귀할 때쯤 아이가 8개월이 되는데 아이가 종일 어린이집에 있을 수 있을까 걱정이 되어서다. 믿을 만한 사람이 아이를 봐주어야 했는데, 그때 우리는 아이를 맡길 곳이 딱히 없던 상황이었다.


세 번째는 남편도 주 양육자로서 육아 분담을 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아무래도 아이와 단 둘이 있다 보면 아이를 혼자 돌보는 법을 알게 되고, 그게 진정한 육아의 시작이니까.


육아휴직을 결심하기까지 남편도 참 많이 망설였다. 급여가 갑자기 반으로 줄고 또 보너스도 받지 못하게 된다는 경제적인 걱정이 앞섰다. 아직까지 남편 직장에 아이가 있는 남자들 중 몸이 아파서 명목상 육아휴직을 내고 요양을 하는 사람은 있었어도 진짜 아이를 돌보려고 휴직을 내는 사람은 없었기 때문에 그 부분도 눈치가 보였다. 아직까지 휴직자는 승진에 절대 불리하기에 앞으로 계속 일을 해야 할 우리는 이런 점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남편도 내 생각에 어느 정도 동의했기에 육아휴직을 내기로 큰 마음을 먹었다. 회사에 육아휴직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또 조직장 면담과 같은 여러 절차를 마치고 드디어 남편도 육아휴직자가 되었다. 시부모님이 어떻게 생각할지 솔직히 조금 걱정되긴 했으나 다행히 너희의 결정이면 그렇게 하라고 지지해주셨다.




육아휴직 시기 남편은 아이와 참 많은 시간을 보냈다. 회사에서 중간중간 남편이 보내온 사진을 보면 아이와 남편 모두 참 편안해 보였다. 좀 지쳐 보이긴 했지만. 그리고 그때 남편이 아이를 돌보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더 안심하고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 부부가 모두 ‘혼자서 육아’를 해 본 경험을 가진 사람으로서 공감의 폭이 넓어지고 그래서인지 부부 사이도 더 끈끈해졌다. 5개월 남짓한 그 시간 동안 아이가 건강하게 성장한 것은 물론이다.




우리나라에서 남성 육아휴직자가 전체 기혼 유자녀 남성의 1.8%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를 뉴스에서 접했다. 이 기사를 보고 남편에게 “우리 남편 상위 1퍼센트네! 대단하네!”하고 칭찬을 해 주었다. 주변에 아무도 육아휴직을 하지 않았는데 참 큰 용기를 내어 준 남편이다.


그래서 나는 대한민국의 1% 부자가 되는 것보다도 대한민국 애 딸린 유부남 중 육아휴직을 쓴 1%인 남편이 있는 것이 더 자랑스럽고 좋다. 그리고 복직해서는 나와 비슷한 또래의 부부들에게 꼭 남편도 육아휴직을 해 보기를 권한다. 다행히 아직까지 남편 육아휴직을 후회하는 커플을 본 적은 없다.




남편이 아직 남자 친구였던 시절, 나는 이 사람이 다정한 남편이 될 줄은 몰랐다. 그리고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남편이 자신을 내려놓고 아이에게 집중할 줄 아는 헌신적인 아빠가 될 줄은 전혀 몰랐다. 한 겹 긁어내야만 당첨 여부가 나오는 복권처럼 곁에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 될지 모르는데 운 좋게도 이 사람을 선택하게 된 게 참 신기하다.


늘 옆에 있어서 고마움을 잘 느끼지 못하는 내 편이 사실은 1%의 행운이라는 것, 오늘도 그 사실에 감사하며 하루를 마무리해봐야겠다.


Photo by Caroline Veronez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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