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필수적인 일이어야 할까?
언젠가 한 드라마에서 갑질을 당하던 어떤 고용인이 뭐가 가장 힘드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고용주의 기분을 맞추는 일이 가장 힘들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아…저 사람 참 힘들겠다.”라는 생각을 했었던 듯하다. 그런데 돌이켜 생각해 보니 나도 누군가의 기분을 맞추어 주며 살아가고 있다.
동료가 자신의 고충을 토로했다. 본인의 팀장이 감정기복이 심해 기분이 나쁜 날에 총알받이가 되어야 해서 너무 힘들다고 했다. 기분을 맞추는 것, 그것은 꽤나 큰 스트레스다. 그리고 그 기복이 큰 사람 밑에서 일하는 건 최악이다.
나도 몇 년 전 그런 성향이 짙었던 리더 밑에서 일한 적이 있다. 막내였고, 만만했던 나는 자연스레 그의 감정 쓰레기통이 되었다. 그의 기분이 좋지 않은 날은 업무의 세세한 부분까지 지적을 받기 일쑤였고, 그런 부분 때문에 그에게 보고를 하는 일이 참 힘들었다. 갑자기 버럭 화를 내는 날이면 내 하루도 바스락하며 쪼그라들었다. 그런 일이 반복되던 끝에 나는 직장생활 처음으로 용기를 내어 그 팀에서 나오게 되었다. 당시에는 내가 도망치는 것 아닌가 하는 마음도 들었지만 지금 돌아보면 참 잘한 선택이었다.
직장에서 상사와 우리는 분명 갑과 을의 관계다. 하지만 사실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자율성을 가지고 있다. 기분을 맞추기가 너무 힘들다면 팀을 옮길 수도 있고, 회사를 옮길 수도 있고, 여유가 된다면 잠깐 쉴 수도 있다. 상사의 기분을 맞추는 것을 감당할 만큼 현재 처우가 좋거나 업무나 동료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면 감당해 내면 될 일이다. 우리에겐 선택권이 있다. 나조차 그걸 많이 잊고 살지만 말이다. 때론 이런 팩트를 다시 한번 마음에 새기는 것만 해도 힘이 된다.
필수는 아니다. 내 선택인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