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이담 Apr 15. 2024

마지막 출근

10년 동안 적어온 일기장을 덮듯

“거 참 운 좋네.”


출근길, 눈앞에서 버스를 놓쳤다. 그리고 조금 뒤 바로 버스가 왔다. 당연하게도 내 앞에는 아무도 없었고, 버스 안에도 사람이 별로 없어서 앉아서 지하철 역까지 갈 수 있었다. 이 날따라 날씨도 너무 좋았다. 모든 것이 마지막 출근길을 축복해 주는 듯했다.


그동안 고생했다. 시원하고 향긋한 바람에 힘들고 슬픈 기억은 훠이훠이 날려버리고 행복하게 새 아침을 맞자. 꼭 그렇게 말하는 것처럼 오늘 하루는 정말 시원하고 상쾌한 느낌이다.


같이 일찍 출근을 하는 친구가 연락을 했다. 마지막 출근 날 회사 앞에서 사진을 찍어주겠다며. 웃으며 사진 몇 장을 찍고 사무실로 들어왔다. 출근해서 바삐 일하고 있는 동료와 반갑게 인사를 했다. 전 날 적어둔 퇴사 메일을 퇴근 전 보낼 수 있게끔 예약을 걸어두었다. 인사를 미처 못 한 사람들을 만나 몇 차례에 걸쳐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안녕히 계세요. 잘 살 거예요. 부럽습니다. 응원합니다. 다들 웃는 얼굴이다. 다행이다. 회사 생활을 헛하지는 않았던 듯하다.


바쁘게 몇 가지 일들을 인수인계하고 팀 사람들과 함께 밥을 먹으러 나갔다. 퇴사 축하 선물과 편지를 받고 눈물도 조금 흘리고 기념사진도 찍었다. 짐을 싸고 나오는데 몇몇 사람들을 만나 급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졌다. 마지막으로 친한 친구가 나와 짐을 들어주고 택시를 태워주었다. 둘이 함께 눈물이 찔끔.


“나 왜 눈물이 나지. 정말 미련 같은 건 하나도 없는데.”


“졸업식 같은 느낌이어서 그런 것 아닐까.”


“그러네.”


집에 와 짐을 대충 정리하고 친정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향하는 길 퇴근 시간이 다 되어 메일이 갔나 보다. 선배 한 분이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주셨다. 미리 인사까지는 드리지 못한 선배였었는데 많이 놀랐나 보다. 메일함으로 들어가 메일이 잘 갔는지 살펴보니 메일 답장이 몇 개 와 있었다. 고마운 사람들. 메일에 감사하다는 인사를 더해 보내드렸다. 아마도 마지막 메일이 될 테지. 뿌듯하고 후련한 느낌이다. 10년 동안 써 내려갔던 일기장이 다 되어서 아쉽지만 새 노트를 꺼내 들고 책장을 덮는 느낌이다.


좋은 일기장이었다. 자 이제는 또 다른 일기장이 펼쳐진다. 잘 써내려가봐야지.

매거진의 이전글 기분을 맞추는 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