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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동희 북노마드 Apr 28. 2021

오늘도 정성껏

‘도’를 생각한다. 도는 하늘과 사람의 관계다. 천명(天命), 하늘이 사람에게 부여한 것을 ‘성(性)’이라 한다. 인간의 본성이자 천성이다. 그 성에 따르는 것을 ‘도’라 한다. 『중용』을 인용한다. 


“성(誠)은 하늘의 도이다. 이를 성실하게 지켜나가는 것이 사람의 도이다.” 


성은 글자 그대로 정성이다. 순수한 마음이다. 참되게 하는 것이고, 삼가고, 공경하는 것이다. 옛 사람들은 성, 즉 진실과 성의가 삼라만상의 기초라고 보았다. 성은 사물의 근본이다. 


인생은 정성껏 살아야 한다. 성의 있는 사람은 요동치지 않는다. 희로애락이 아직 발동하지 않은 상태를 중(中)이라 한다. 중이란 희로애락이 나타나지 않는 상태다. 기쁨과 성냄과 슬픔과 즐거움이 형태를 갖추기 전, 그러나 아무것도 없는 건 아니다. 중은 모든 움직임의 기초다. 그 중의 상태가 밖으로 드러나면 도리에 합당해진다. 화(和)다. 우리가 타당하다고 여기는 것은 그 속[中]에 들어 있는 본성이 밖으로 나타난 것을 말한다. 타당한 기쁨, 타당한 분노, 타당한 슬픔, 타당한 즐거움이다. 


인간은 도리에 합당하게 표현해야 한다. 타당한 생각을 하고, 타당한 말을 하고, 타당한 행동을 해야 한다. 그것을 가리켜 ‘중화(中和)’라고 부른다. 덕성이 중용을 잃지 않은 상태다. 서로 다른 성질을 가진 것이 섞여 그 중간의 성격을 띠게 하는 것이다. 세상은 무에서 유로 옮겨간다. 무(無)는 곧 성(性)이고 중(中)이다. 중이 화(和)하면 유(有)가 된다. 중화다. 노자 사상의 정수다. 


공자는 다르다. 노자가 중화를 말할 때 공자는 중용(中庸)을 말했다. 어느 쪽으로나 치우침이 없이 올바르며 변함없는 상태다. 용은 상(常)이다. 항상 상, 항상적인 것이나 보편적인 것이다. 늘 존재하는 평범한 것이다. 공자는 중(中)을 일상의 평범한 사물에서 찾았다. 공자에게 중은 경향(傾向)의 속성을 지닌다고 보았다. 현상, 사상, 형세 등이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방향성을 띤다고 보았다. 용을 실현 또는 표현의 속성으로 파악했다. 중과 용, 이 다른 성질을 하나로 합치는 것을 성(誠)으로 간주했다. 앞에서 그토록 강조한 진실과 성의다. 한 단어로 정리하면 ‘인(仁)’이다. 공자가 인간의 본성으로 파악한 핵심 개념이다. 


공자의 인은 오늘날 미니멀리즘이다. 공자는 가벼운 옷을 입고 봄날 바깥을 거닐며 바람을 쐬는 것이 나라를 다스리는 것보다 현명하다고 말했다. 마음의 평안과 몸의 평온을 추구했다. 간소한 생활에서 무한한 즐거움을 찾았다. 


노자는 ‘중’의 사상을 중시한다. 모든 것은 각각의 경향으로 흐른다고 보았다. 공자는 경향에 머물지 않고 그것이 실현하는 운동력에 방점을 둔다. 노자와 공자는 다르다. 동시에 닮았다. 노자와 공자 모두 ‘전체’를 파악하는 태도를 중시했다. 전체를 내다보는 현명함을 갖춰야 한다는 데 생각이 다르지 않았다. 노자는 무에서 유로, 공자는 중에서 용으로 나아갈 뿐이다. 


전체를 내다보는 현명함은 ‘총명(聰明)’이라는 단어로 압축할 수 있다. 스스로 보고 듣는 일이다. 자기를 아는 일, 자각(自覺)이다. 자기에서 나와 자기에게로 돌아가는 일을 ‘노(老)’라고 했다. 그렇다면 나이 든 자의 할 일은 ‘자기’를 아는 것이다. 무에서 유로 나왔다가 다시 유에서 무로 돌아가는 세상의 섭리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총명한 자는, 지혜롭게 늙는 자는 아직 형태를 갖추지 않은 ‘중(中)’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아직 드러나거나 나타나지 않은 일의 배후를 파악해야 한다. 동시에 용(庸)의 배후에 자리한 중을 간파해야 한다. 


어려운가. 쉬운 말로 정리하자. 현실을 전체적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일일이 시시비비를 가리지 말고, 일희일비하지 말고, 전체적인 전개의 모양을 보라는 것이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기쁜 일이든 슬픈 일이든 ‘점잖게’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하루하루 늙어가며, 나는 점잖게 살고자 한다. 전체의 기운과 형세를 파악하려 한다. 지금 내 앞의 일이 지혜로운 것인지 어리석은 것인지 분별하려고 한다.


성실해야 한다. 지성(至誠), 지극히 성실한 사람만이 하늘이 부여한 천성을 아낌없이 쓸 수 있다. 자신에게 진실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진실하게 대한다. 자신에게 충실한 사람은 만물의 천성을 돕는다. 성이 곧 도다. 도가 곧 성이다. 


성은 영원하다. 멈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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