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먹을 일이 아니었는데
평범하게 사는 네가 부러워_03
얼마 전 일이다.
집엔 친정부모님이 주신 고구마 작은 한 상자가 몇 개월째 있었다.
신혼 초에 쪄먹는 요리를 해 먹겠다고 몇 번 냄비를 태워먹은 후론 삶고 찌는 게 엄두가 안나더라.
불 조절을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물을 자작히 충분히 부었다고 생각했는데
뜨거운 불에 증발된 수증기로 안 보이는 냄비 물의 양을 짐작하는 건 나에겐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다.
그 때문에 뒷베란다 구석이지만 잘 보이는 곳에
고구마 한 박스가 눈에 계속 밟혔다.
서늘한 곳이라 직사광선이 안 드는 곳이라 그런지 방치했는데도 잘 썩지도 않더라.
내심 썩어서 어쩔 수 없이 버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했었는데...
겨우내 우리 가족은 고구마를 놔두고선 슈퍼에 가서 군고구마를 사 먹으며 외면했다.
적어도 나는 확실히 외면했다. 겁이 났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집에서 만든 군고구마를 받아먹은 날이 있었다.
슈퍼에서 산 것처럼 촉촉 쫀득 그리고 군고구마의 특유의 탄향까지 완벽한 군고구마였다.
너무나 맛있게 먹고나니 여전히 뒷베란다에 있는 고구마가 생각났다.
며칠 후 더 이상 놔두기엔 안되겠다 싶어 만져보니 무르지도 않고 섞은 흔적 전혀 없이 받은 그대로 단향 가득 단단했다.
이 고구마..... 섞을 일 없겠구나 싶어 바로 검색하기 시작했다.
'에어프라이기로 군고구마 만들기'
냄비로도 만드는 방법이 있어 보였는데 다시 태울까 봐 겁이 나니 집에 있는 에어프라이기로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 거다.
180도 20분
뒤집어서 180도 20분
그게 다였다. 이렇게나 쉽다고???
바로 용기를 얻어 고구마 모두 꺼내어 깨끗하게 씻고 다듬은 뒤 에어프라이기에 돌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집엔 고구마 향이 가득해졌고 뒤집을 타임이 되어 꺼내보니 여전히 딱딱했다.
순간 또 불안해졌다. 괜찮았던 고구마를 애써 건드려 버리는 게 아닌가 하고 말이다.
그래도 일단 과정이 하나 더 남았으니 익은 지 확인했던 젓가락을 이용해 하나하나 뒤집고 20분을 보냈다.
슬금슬금 군고구마 향이 나기 시작했다.
그 순간 이러다 타버리는 것이 아닌가 연기가 진동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마음과
딱 알맞은 꿀 똑똑 군고구마가 완성하는 것인가 하는 두 마음이 심장을 서로 두들겼다.
드디어 완성
감사하게도 타지도 않고 바짝 마르지도 않은
촉촉 쫀득 꿀 가득한 군고구마를 만나게 되었다.
안도의 숨을 쉬곤 아이에게 한입 주니 뜨거워 후하 후하하면서 맛있다고 잘 먹었다.
아이에게 주고난 뒤 한입 베어 물으니 아이의 미소처럼 달콤한 맛에 미소가 지어지더라.
드디어 뒷베란다에 고구마가 사라졌다.
나의 걱정과 신경도 사라졌다.
할 때마다 냄비를 태운다고
늘 태우는 건 아닐 텐데
다른 방법이 있는데
몇 개월을 걱정과 염려로 보냈구나 하면서 말이다.
이렇게 돌아보면 괜한 걱정했구나 진즉할 걸 하는 일을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는 경우가 많으니 말이다.
뒷 베란다의 고구마를 보면서
무사히 군고구마로 변신해 가족에게 미소를 주게 되면서
신경 쓰인다고 걱정된다고 피할 문제가 아니구나
어떠한 일이든지 부딪혀 볼만하구나
덜컥 오른 겁에 주눅 들었다 간 결국 나만 손해겠구나 생각 들었다.
에어프라이기에 고구마 넣을 생각을 안 했더라면
생각했더라도 고구마를 안 넣었더라면
지금까지도 고구마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고
고구마를 신경 쓰여하면서도 마음 한편에 겁이 자리하고 있었겠구나 생각들었다.
누가 보기에도 집에 방치된 고구마를 군고구마로 만들어 먹는 평범한 작은 일상이다.
하지만 나에겐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
큰일이 없어도
인생의 큰 굴곡의 일이 없어도
누군가에게 아무 의미 없는 평범한 일상임에도
다르게 보이고 생각하게 됨에 감사하게 되더라.
꼭 남들과 다른 일이 있을 필요 있을까?
보편적이고 반복된 하루하루를 살아가더라도
우린 남들과 다른 특별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는 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버려질 고구마가 군고구마로 바뀐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