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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니레아 Mar 15. 2024

반면교사

평범하게 사는 네가 부러워_02

반면교사

사람이나 사물 따위의 부정적인 면에서 얻은 깨달음이나 가르침을 주는 대상


직장인으로 사회생활한 지 15년째...

덕분에 회사 동료들은 나에게 회사에서의 이런저런 고충이나 사회에서 겪은 고민들을 나에게 얘기하곤 한다.

나 역시 그 당시 고민했던 것들이었기에 어떻게 극복했는지 진지하게 얘기해준다.

더불어 그때엔 나도 내선전화 울리지 마라고 기도하고 받으면 쩔쩔매는 쫄보 그 자체였다고

지금 그런 건 안 익숙해서 그런 거라고 시간이 가면 괜찮아질 거라고 조언했다.

나의 조언과 얘기를 듣고는 하는 얘기가

"완전 이성적이고 무슨 일이 터져도 먼가 차분하게 해결해 버리니 그런 모습이 상상이 안 가요."라고 했다.

쫄보 그 잡채라는 단어가 나와는 안 어울리는 느낌이라고 그때의 내 모습을 보고 싶다면서 너무 궁금하다고 하면서 말이다.

"저도 언젠간 타닥타닥 일처리 호로록할 수 있게 되면 좋겠어요." 그러기에 그리 될 거라고 하니

약간 전문가에게 인터뷰하면서 자기도 그랬다고 알려주는 것 같았다고 하더라.


난들 일하면서 회사에 겪은 부당함과 어려움이 없었겠는가.


대학 졸업하자마자 입사한 지 일주일째 겪은 일이다.

입사 축하 겸 맛있는 거 사 먹자고 해서 퇴근 후 저녁식사하러 상사와 함께 나섰다.

어느 백화점에 주차하며 영문도 모른 채 상사 뒤를 졸졸 따라갔다.

백화점 식당층에 가서 간단하게 한식(비빔밥인 것 같다)을 먹고 계산하고선 나에게 영수증을 줬다.

공금처리 하라는 거였다. 여기까진 그래도 뭐... 사비로 사주기 그랬을 수도 있겠다 생각 들었다.

저녁식사가 끝났기에 집으로 가면 될 거라 생각했는데 갑자기 또 다른 곳으로 가자고 했다.

말단 사원이 무슨 말을 할 수 있었겠는가. 또다시 상사 뒤를 따라갔다.

백화점에 있는 전시회장으로 향했다. (갑자기 무슨 전시회??)

상사는 전시회 주최자와 인사를 나누며 뒤에 있는 나를 소개해주었다.

알고 보니 지인의 전시회를 간 거였고 나를 이용해 비서처럼 대동한 거였다.


그 순간 식당에서 밥 먹으며 나에게 한 말이 생각났다.

"우리 회사는 00 하는 회사라 단정하게 다녀야 해 정장차림으로 다녔으면 좋겠고

머리는 간호사처럼 올림머리로 하고

귀걸이는 길게 달랑 거는 거 말고 심플한 걸로 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눈이 많이 안 좋니? 안경을 꼭 껴야 하는 게 아니면 렌즈 꼈으면 좋겠다."


그 모든 말들이 한순간에 이해가 되었다.

나는 살면서 외모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들어 본 적이 없다. 적어도 내 기억상으론...

그리고 회사에 가면 단정하게 다녀야 하는 것을 나도 안다. 최대한 깔끔하고 단정하게 입고 다녔고 운동화가 아닌 로퍼종류로 신고 다녔다. 이런 말을 하기에 가볍게 넘겼었는데 그렇게 넘길 문제가 아니었던 거였다.


내 안에 이유 모를 다양한 감정들로 인해 요동치기 시작했다. 전시회를 어떤 정신으로 둘러봤는지도 기억이 잘 안 난다. 자기 볼일 다 끝났는지 상사는 나에게 어떻게 집으로 갈 건지 물었고 인근 지하철에 내려주시면 알아서 가겠다고 했다. 차에서 내려 집으로 향하는 지하철이 도착했다.

빈자리에 앉자마자 실연당한 것처럼 사연 많은 사람처럼 그렇게도 서럽게 울면서

집에서 뿌듯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을 아버지에게 전화하며 얘기했다.

"회사 그만두고 싶어요."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울컥거린다... 그 순간 아버지도 속상하셨는지 힘들면 그만두라고 일단 집으로 오라고 얘기하셔서 멈추지 않는 눈물을 닦아가며 겨우겨우 집에 도착했다.


아버지는 먹거리며 제대로 된 얘기조차 하지 못하는 나를 보곤 놀라셨는지 계속 그만둬도 된다고 하셨다. 그런데 그만두라는 말을 듣자마자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사랑 가득 받으며 자란 귀한 딸인 난데 그깟 일에 흔들려서 그만두는 건 아니다.

내가 상사가 되면 저렇게 행동하고 말하지 말아야지 절대로!!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게 되었다.

그다음 날 아버지껜 회사 계속 다닐게요라고 하며 늦지 않게 평소처럼 출근했고 주머니 속에 꼬깃꼬깃 넣어놨던 저녁식사 영수증을 공금처리했다. 그 후 퇴근하고 나면 근로자교육 자격증반 등록해 관련 자격증을 따면서 몰래 주경야독하며 나만의 커리어를 쌓기 시작다. 덕분에 1년 만에 이직의 기회가 찾아왔다. 나는 바로 사직서를 제출했고 대표이사님의 만류에도 그만뒀다.  (나중에 호기심에 궁금하기도 해서 찾아보니 회사가 없어져 있었다.)

직장생활 15년을 지나오면서 내 인생에 교과서처럼 기억해야 할 사람들이 생겨났다.

이건 절대로 배우지 말아야지 꼭 기억하고 지켜야지라고 내 마음속에 손절해야 할 사람들의 모습이 저장되었다.


그게 알고 보니 반면교사였던 거다.


나는 그렇게 남들에게 반면교사가 되지 않기 위해 내 나름대로 노력해 왔다.

배워야 할 점에 대해서 실천하고

배우지 말아야 할 점에 대해서 제어했다.

제목의 사진도 나와 함께한 동료들이 퇴직하며 나에게 남기고 간 손편지다. 보면 내가 뭐라고.. 해준 것 없는데... 라는 생각을 하면서 좋게 생각해준 동료들에게 감사한 마음의 눈물을 흘리며 기억하기 위해 찍은 사진이다.

아직도 배울 것이 많은 사람이다. 하지만 이 감사한 마음을 받을 때면

보상받는 기분이었고 나의 직장생활이 적어도 헛되진 않는구나 생각하며 또 더 고칠 점은 없는지 점검하게 된다.


매일매일 나는 나와 싸운다.

루즈해지고 나태해지려고 하는 나와

이렇게 살면 안 된다고 정신 차리라고 하는 나와 치열하게 싸운다.

이게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 아닐까 생각 든다.

보호자의 보호 아래에서 마음대로 행동해도 용서가 되는 어린 시절을 지나

스스로를 점검하고 통제해야 하는 어른이 된다는 것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아쉬움이 들면서도 이렇게 살아야 어른이지! 이게 맞아!라고 마음을 다잡는다.

평범하게 무난하게 하루를 보내는 것 같지만

내 안에선 이렇게도 치열하게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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