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일까? 눈치일까?

독서모임을 마치고

by 라온써니

내가 1년 6개월째 꾸준히 하고 있는 독서모임 이름은 ‘주경야독’이다. 말 그대로 퇴근 후 피곤한 몸을 이끌고 한 달에 두 번씩 모임을 갖는다. 지정된 도서를 읽고 자유논제와 선택논제를 중심으로 토론을 진행한다. 내년에 이사로 거리가 멀어지고 혹시 발령까지 난다면 바빠질 수도 있어 아마도 올해가 마직막이 될 듯하다. 집과 직장만 반복하다가 처음 용기 내어 나간 모임이고. 이를 기반으로 글쓰기모임까지 뻗어가게 해준 고마운 출발점이라 애틋하다.


오늘의 토론 도서는 [나는 옐로에 화이트에 약간 블루/브래디 미카코]다. 책에 대한 별점을 주는 것으로 토론을 시작한다. 그 후 별점을 준 이유를 진행자가 물어본다. 보통 최저점과 최고점을 먼저 시키므로 재미있게 본 것을 살짝 숨기며 최고점이 되지 않게 조정한다. 오늘 나의 점수는 5점 만점에 4.3.


책을 읽은 후 일주일만 지나면 다 잊어버리는 나의 특성 때문에 재미있게 읽었다는 추상적인 느낌만 남은 상태에서 무엇을 말해야 하나 머리가 아파온다. 진행자가 언제 부를까 불안하다. 어떤 분이 책의 내용뿐만이 아니라 편집까지 조목조목 짚어가면서 말한다. 청산유수와 같은 말을 듣고 있으니 더욱 떨린다. 드디어 나를 호명했다.


“음...저는 요, 이게 영국 내 중학교 간 아... 뭐라고 해야 하나...음...”


말이 막히니 답답하셨는지 대각선 끝에 계신 분이 나를 보면서 외친다.


“차별! 차별!”


“아... 차별에 대해서 쓴 글이잖아요. (나중에 생각해 보니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불평등이었다) 제 딸이 초등 6학년인데 중학교 입학 때문에 이사 예정이라 아주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앗~ 지금 내가 무슨 말을 한 거지? 아무리 생각해도 내용이 부실하다. 요즘 머리에 꽉 차 있는 게 저절로 튀어나왔다.


“아~ 교육에 관심이 많으시군요.”


누군가가 말했다.


졸지에 맹모삼천지교하는 열혈엄마가 되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당황한 마음에 눈을 이리저리 굴리다가 우연히 다른 분들의 책상에 시선이 갔다. 오호라~ 집에서 잔뜩 뭔가를 써오셨네. 나의 발표가 구린 것은 내가 못나서가 아니라 준비를 안해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살짝 위로가 되었다.


자유논제토론 시간이다.


브렉시트나 테러 문제처럼 세계에서 일어나는 온갖 혼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나랑 다른 입장의 사람들, 나랑 의견이 다른 사람들의 기분을 상상해 보는 게 중요하대.(85p)

‘인간이 남이 신발을 신어보려 노력하는 것, 그렇게 한번 분발하게 하는 원동력, 그것이야말로 선의, 아니 선의와 가장 가까운 무언가가 아닐까.(p.98)


발췌문을 읽고 ‘공감’에 대해 이야기 나눈다. 나는 주로 듣고 있다.


“남의 신발을 신어보는 게 중요합니다. ... ...어쩌구 저쩌구...”


공감의 필요성에 대해 여러 사례를 들어 말씀하신다.


‘제가 찬물을 끼얹는 발언인지는 모르겠지만, 남이 자기 신발을 함부로 신으면 오히려 기분 나쁘지 않을까요?


누군가가 다른 의견을 낸다. 나는 듣자마자 크게 웃어버렸다. 웃기기도 했고, 말도 안 되는 의견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그래도 속마음을 숨겼어야 했는데 상대방은 비웃는다고 느낄 것이다. 시도 때도 없이 나오는 웃음이 문제다. 입을 틀어막고 싶었다.


“여기서 신발은 비유죠 비유.”


먼저 말씀하신 분의 목소리가 살짝 격양되었다. 두 분의 딱 중간에 앉은 나는 분위기를 상쇄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들었다.


“신발이라고 하지 말고 모자나 외투라고 하면 좋았을 텐데요. 신발은 냄새나죠. 하하하”


지금 내가 무슨 소리 하고 있는 거지? 반론을 제기하신 분에게 실례가 되는 발언이 아닌가? 나의 생각 없는 행동을 만회하기 위해 한마디 하였으나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킨듯하다. 표정을 살피니 인상 쓰고 계시진 않다.

휴~ 다행이다. 그래도 마음이 편하진 않다.


어떤 분이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예를 들으시면서 연예인 관련 기사에 추측성 댓글이 많다는 지적을 하셨다. 만회할 기회가 왔다. 성급히 중간에 끼어든다.


“자기 맘대로 추측하여 댓글을 쓰는 게 남의 신발을 함부로 신는 게 아닐까요? 그런 경우라면 저도 기분 나쁠 것 같아요”


그분의 마음을 다독일 쐐기 멘트를 날리고 나니 안심이 된다. 그분도 매우 흡족하게 웃고 있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데 나만 혼자 민감하게 생각하면서 오버하는 것 같기도 하다.


오늘따라 책 감상평부터 말이 막히더니 토론 내내 집중이 안 된다. 집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문득 내가 부모님 때문에 괴로워했을 때 친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너는 착한 사람이 되려는 마음을 버려야 해. 그거 쓸데없는 자만심인데 결국 너를 망치게 한다.”


진짜 내가 착한 사람 콤플렉스에 걸린 걸까? 아님 다른 사람을 너무 배려하나? 배려가 아니라 눈치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눈치와 배려의 차이점을 모르겠다. 난 눈치는 없더라도 솔직한 사람이 좋다. 요즘은 세련된 매너(상대에 대한 애정이 없는)있는 사람들이 넘쳐나기 때문에 좀 투박하더라도 애정 어린 솔직한 말을 건네주는 사람이 너무나 그립고 사랑스럽다.


나는 남에게 싫은 소리를 잘 못하는 성격으로 그 때문에 힘들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나이가 들수록 조금씩 개선되고 있다는 거다. 한때 유행했던 책 제목처럼 ‘미움받을 용기’를 내고 싶다. 나도 모르게 다른 이에게 상처를 주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남을 걱정하기보다는 나의 마음을 더 소중히 생각하고 싶다. 자신을 가장 먼저 배려하는 이기적인 사람이 진정으로 다른 사람을 배려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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