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은 나의 즐거움(?)

by 라온써니

출근이 즐겁다고 쓰다니 나 자신도 놀랍다. 그동안 얼마나 힘든 적이 많았던가?


애 어릴 때는 일을 해야 하는 내 신세가 정말 더러운 팔자라고 생각했다. 또한 전 직장은 얼마나 최악이었던가? 집에 일을 싸 들고 와 밤 12시까지 머리를 잡아 뜯으며 울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2~3년에 한 번씩 발령 나다 보니 좋은 분도 만나지만 다시는 얼굴도 마주치고 싶지 않은 사람도 만나게 된다. 힘든 인간 때문에 잠 못 잔 날은 얼마나 많았던가?


너무 힘든 어느 날 친한 직장 동료에게 하소연을 했다. 발령이 몇 개월 안 남았는데도 못 참겠다고, 달력에 하루하루 엑스표 치며 견디고 있다고,


그랬더니 그분이 “나 이런 사람이야” 하면서 작은 수첩을 내 앞에 짠~ 하고 보여주셨는데, 날짜에 엑스표를 치고 있었다. 한참을 같이 웃었다. 항상 편안해 보이셨기에 의외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 뒤이어 해 주신 말씀은 잊을 수가 없다.


“직장 다니니까 얼마나 좋아? 이상한 인간들 구경도 하고, 또 배우는 점도 많잖아. 이런저런 일을 극복하는 과정이 나를 성장시키는 발판이 되니 좋지. 좋은 기회를 주는데 돈도 주니 직장이 얼마나 좋은 곳이야~~”


뭐시라구요?!!! 이런 신박한 아이디어가 있나~~ 독실한 불교 신자셨는데 나도 불교를 믿어야 하나 순간 흔들렸다.


“하지만 선생님~ 성장이 문제가 아니라 전 1년만 여기 더 있다가는 정신병원 가게 생겼다고요.~~"


2019년 승진과 함께 현재 도서관으로 발령 나면서 지옥에서 3년만에 탈출했다. 힘든 업무와 인간이 결합한 진정한 헬을 겪고 나오니 그때와 비교하면서 웬만한 것은 다 참아졌다. 또한 애가 크고 집에서 할 일이 줄어들면서 직장이 있다는 게 감사하게 느껴졌다. 어쨌든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일을 하고 돈을 번다는 것은 큰 위안이 된다.


직장 생활이라는 게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매너리즘에 빠지기 쉬우며, 원하지 않은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돈의 노예라는 생각마저 든다. 하지만,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라도 생계를 위해 하기 시작하면 힘들어질 것 같다. 예를 들어 글쓰기도 돈을 벌고자 마케팅 개념이 도입되면 힘든 노동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톨스토이가 쓴 <크로이체르 소나타>라는 소설에서는 그런 성찰이 나오지. 과잉 영양을 노동(모든 일은 노동이다)으로 소모하지 못하는 자가 갈 곳은 성적 집착과 타락이라고. ... 엄마가 너희가 어느 정도 큰 다음에는 굳이 도우미 아주머니를 쓰지 않으려 한 이유도 이런 거야.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집안일이 참으로 나를 겸손하게 해주고 맑게 해주더라는 것을 깨달았기에.

딸에게 주는 레시피/공지영 148p.


고통을 견디면서 매일 출근한다는 것은 물속에 아예 가라앉지 않게 어느 정도 띄워주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마음이 약해져서 심해로 쿵~ 떨어져 버릴 것 같은 날도 출근하여 정신 쏟고 일을 하다 보면 힘든 마음이 어느 정도 흐려진다. 나같이 정신 줄 약한 사람은 혼자 오래 있으면 안 된다.


원하지 않은 일을 꾸역꾸역 하지만 어쨌든 사회라는 톱니바퀴 안에서 뭔가를 하기 때문에 고인 물로 썩지 않을 수 있다. 나는 혼자 집에 있으면 아무것도 안 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억지로 어딘가로 끌려가야 한다.


인생을 사는 게 만만하지 않는다는 것을 매일 느끼며 허황된 생각을 품지 않고 현실에 두발을 딱 붙이고 겸손하게 살 수 있다. 나는 안드로메다로 갈 가능성이 큰 인간이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물론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건 최근 내가 보낸 2년의 보직이 살만해서 그런지도 모른다. 전 도서관에 비하면 일도 수월해졌지만 특히 사람들이 좋다. 내년에는 어디로 발령날 지 모른다. 지뢰를 밟을까 두렵다. 내년에도 이 마음 변치 않고 이런 감사의 글을 쭈~욱 쓸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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