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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온써니 Apr 15. 2023

내가 아는 세계는 너무 좁다.

인식의 한계

갑자기 잠이 깼다. 시계를 보니 새벽 3시다. 딸이 집에 들어온 것을 못 보고 잠이 들었고, 불안감에 본능적으로 깬 것 같다. 요즘 중간고사 기간이라 아이가 스터디 카페에서 늦게까지 공부하는 경우가 많다. 자는 아이 얼굴이라도 보고 자려고, 아이 방문을 열였는데, 아이가 없는 거다. 너무 놀라 그 새벽에 옷을 갈아입고 스터디 카페로 향했다.

 

심장은 뛰고 마음은 급한데 하필 엘리베이터가 층마다 서면서 올라오는 거다. 도대체 무슨 일인가 싶다가 요즘 새벽 배송이 이렇게 많구나 하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데 드디어 14층에서 문이 열렸다. 택배 아저씨라고 확신하고 있었는데 의의로 인상 좋으신 할아버지가 신문 배달 중이셨다. 우리 앞집에 신문을 던지시며 한 층만 더 올라갔다 오신다면 연신 미안해하셨다. 

 

결국 엘리베이터는 15층 한 번 더 선 후, 드디어 14층에서 나는 탔다. 할아버지와 함께 탔는데 새벽 3시에 얼굴이 허해져있는 나를 쳐다보는 그분의 표정에서 왠지 모를 따뜻함이 느꼈다. 사람의 성품과 마음은 공기처럼 느껴지는 것 같다. 스터디 카페에 가보니 아무도 없었고, 심장이 미치는 듯 뛰며 112신고 등 별의별 생각을 다하며 집에 도착하니 떡하니 아이가 있었다. 아이는 스터디 카페에서 공부하다가 잠이 들었고 하필 나와 엇갈려서 집에 들어온 것이다. 

 

어쨌든 스터디 카페 해프닝은 끝났지만, 할아버지는 기억에 남았다. 요즘에도 신문배달이 있다는 것을 또한 그 새벽에 연세 드신 분이 우리 아파트에 신문을 넣으신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된 것이다. 매일 새벽 3시 일어난 일을 그날 우연히 깨지 않았더라면, 아이가 스터디 카페에서 잠들이 않았더라면 절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매일 새벽에 신문 배달하시는 할아버지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감히 상상해 보면서 왠지 모르게 마음이 저려왔다.

 

나는 매일 지하철에서 끼여서 출퇴근을 한다. 편도로 1시간 10분 정도 걸린다. 도서관이 산자락에 있어서 일단 도착을 하면 아름다운 풍광에 힐링 되지만 만원 지하철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다. 지하철 문쪽에서 이리저리 밀릴 때마다 저절로 한숨이 나온다.

 

그런데 같이 근무하는 직원 중에 최근에 사정상 세종시로 이사 한 직원이 있다. 세종에서 서울까지 기차를 타고 출퇴근을 하게 되었다. 처음에 장거리 출퇴근을 하면 너무 우울할 것 같았다고 했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그 기차에 사람이 너무 많다는 거다. 이렇게 고생하면서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에 깜짝 놀랐고 위로를 받았다고 한다. 

 

나는 바로 전에 텅텅 비는 버스로 30분 안에 도착지는 도서관을 다녔기에 이와 비교하면서 지금의 상황에 불평불만만 했지 지방 장거리 출퇴근은 그 직원 아니면 생생하게 떠올리지 못했을 거다.

 

요즘 ‘슬픔의 방문’이라는 책을 읽고 있다.(아직 다 읽진 못했다.) 저자가 겪은 이야기도 생각하지 못한 것들이 많았다. 

 

그분은 어린 시절 지독한 가난과 성폭행 등으로 고통을 겪었고, 본인은 대학을 나와 기자로 생활하고 있지만, 가족들은 아직도 비정규직을 전전하며 힘든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저자는 남동생이 일찍 생활전선에 나서는 희생이 없었으면 지금의 자신이 없었기에 남동생의 도박 빚 등을 갚아주면서 돌봐주고 있다고 했다. 남동생이 아이를 낳았을 때 기쁘기보다는 가난을 물려받고 힘든 삶을 살 조카를 생각하며 많이 울었다고 한다. 본인이 살아온 힘든 삶을 똑같이 살아갈 조카 생각에 가슴이 찢어졌다고 한다. 

조카의 출생으로 인해 기쁜 것이 아니라 괴로운 마음이 드는 저자의 심경을 나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나의 인지의 세계는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 물론 내가 알 수 없는 사치스럽고 고급스러운 그 어떤 세계도 있겠지. 하지만 내가 상상하기 어려운 고통도 많을 것이다. 행복이란 무엇을 조금 더 갖고 더 성취를 이루고 하는 것보다 세상에 대한 시각을 넓혀서 마음의 폭을 넓혀 가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 그러니 남들과 비교하면서 슬퍼할 필요도 기뻐할 필요도 없다. 그것들은 어차피 다 내가 만들어낸 상상이지 실체가 아니다.  나의 인식 폭은 나의 경험에 의한 아주 한정적인 것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는 순간 왠지 모를 해방감을 준다. 

 

그리고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것들도 내가 노력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많은 것들이 굉장한 행운으로 이루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아는 것들이 전부가 아니라는 통찰, 당연한 것들을 당연하지 않게 인식할 수 있는 감수성을 기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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