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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온써니 Apr 30. 2023

꾸준한 글쓰기가 쉽지 않네~

보이지 않는 것을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해

글을 꾸준히 쓰기가 쉽지 않네. 내 이럴 줄 알고 블로그에 대문에 ‘꾸준히 쓰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선언했는데 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

 

며칠 전 함께 근무하는 동료 직원이 우연히 ‘독서치료’를 검색하다가 내 블로그를 봤다고 했다. 연수 수업 관련 글이어서 정황을 잘 아는 직원이 바로 알아본 것이다. ‘평소에는 검색이 영~ 신통치 않은 것 같더니 하필 그 직원이 검색할 때 딱 걸릴게 뭐람?’ 뭔가 치부를 들킨 것 같은 부끄러운 감정이 들었다.


거의 퇴근 무렵이라 피곤하고 정신도 취약한 상태여서 더 그렇게 느꼈는지 모르겠다. 원래 나는 내가 쓴 글은 올릴 때 말고는 잘 안 본다. 언젠가 나이 들어서 과거를 회상하며 읽어야지 하는 생각은 막연히 있는데, 요즘은 지난 글은 왠지 모를 부끄러움에 잘 읽지 않게 된다.

 

이런 내가 직원한테 걸리고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퇴근길 지하철에서 내가 쓴 글을 몇 개 읽어보았다. 그런데 엄청 이상할 거라는 나의 상상과는 달리 거짓말한 것도 없고, 누구 흉본 것도 없으니 ‘그냥 어쩔 수 없다’ 정도로 내 마음속에서 마무리되었다.

 

이처럼 마음을 드러내는 글을 쓴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최근 독서모임에서 처음으로 소설책을 내신 분이 있었는데 책을 낸 후 사람들의 관심이 많아지면서 오히려 글을 못쓰게 되셨다고 했다. 사람들이 나의 글을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자기검열과 잘 써야 한다는 부담감이 글쓰기를 가로막았고 브런치를 방치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며 구구절절이 공감되었다. 나에게 어떻게 극복했는지 물어보았다. 질문을 받으니 예전 일이 떠올랐다.

 

도서관 직원 중에 <사서, 고생> 책을 샀는데 그 저자가 나인 줄 몰랐다는 분이 있었다. 내 이름이 흔해서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는 거다. 게다가 책을 사게 된 계기가 놀라웠다. 도서관 신입 직원 중에 방송작가하시다가 들어온 분이 계시는데. 그분이 나의 브런치를 보여주면서 글이 읽기 쉽고 좋아서 자주 보신다고 내가 아는 직원에게 소개해 주었다고 한다. 순간 우리 도서관 조직 안에 내 글을 꾸준히 보는 분이 있다는 사실에 움찔했고, 그리고 방송작가였던 분이 내 글을 칭찬해 주었다는 것에 너무 놀랍고 신기하고 기뻤다.

 

그 무렵 책 출간 후 글 쓰는 것에 대해 부담감을 느끼고 있었는데 이런 말을 들으니 기분이 좋으면서도 잘 써야 한다는 압박도 높아졌다. 그러면서 글쓰기가 힘들어졌다.

 

그래도 나는 글을 계속 쓰겠다고 스스로에게 선언했으니,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야 했다. 나는 무조건 나를 위한 글쓰기를 하겠다고 다짐하면서 해법을 찾았다. 내가 쓰고 싶은 글, 쓰고 나서 기분이 좋아지는 글 말이다. 정신없이 굴러가는 하루하루 가운데 글을 쓰는 시간만은 온전히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소중한 시간이다. 그런데 아무래도 공개되는 글이다 보니 나의 여러 갈래의 마음들 중 그나마 좋은 것들을 꺼내게 된다. 그것들을 말로 구체화시키면서 내 마음에 좋은 것들이 더 많이 심게 된다.

 

그리고 책, 영상 등 콘텐츠를 소비하는 게 재미있긴 하지만, 내가 어떤 것을 생산해 내는 보람도 있다. 나를 위한 글쓰기를 하기로 결심한 순간 누군가의 칭찬과 비난의 여부에 흔들리지 말고 아무 잡소리라도 계속 써봐야겠다는 힘이 생겼다.

 

최근 유튜브에서 김미경 강사의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렇게 말씀을 잘하시는 분도 상당한 기간 동안 강의를 망치는 일이 잦았다고 했다. 수모를 당하기도 하고 모욕감도 느끼곤 했는데, 그때 자존심을 내세우지 않고 계속 꾸준히 한 게 지금의 자신이 있게 된 비결이라고 했다. 어쩌면 욕먹는 시간은 당연히 거쳐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어떤 일을 꾸준히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넘어야 할 허들이 있는 것 같다.

 

사실 내 글이 조회 수가 높은 것도 아니고 사람들은 생각보다 나에게 관심이 없으니 이런 걱정들은 내가 만들어낸 상상 속 허들인지도 모른다. 나를 좋아하는 것과 나의 글을 좋아하는 별개의 문제라 나의 친한 지인들도 내가 브런치와 블로그를 하는 것을 알아도 잘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안다. 단지 알면서도 나를 드러낸다는 게 쉽지는 않다.

 

봄이 온다는 뜻의 ‘입춘’은 기이하게 겨울의 한가운데 있다. 가을이 오는 ‘입추’ 역시 그렇다. 봄의 기운을 따뜻할 때가 아니라 ‘추울 때’ 도달해 잇고, 가을의 기운 역시 서늘할 때가 아니라 한창 ‘더울 때’ 이미 우리 곁에 도착해있다. 24절기가 우리에게 주는 지혜는 이토록 실용적이라, 우리는 혹한의 겨울에도 보이지 않는 봄을 상상해야 한다. 그렇게 지금의 노력이 물이 끓기 전, 99도에 이르렀다고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극한의 밤에도, 마지막 1도를 향해 한발 더 나아갈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희망의 상상을 삶에 뿌리내리는 것이다.


칼럼 <조선일보 [소설가 백영옥의 말과 글] 보이지 않는 것을 본다는 것 > 일부

 

우연하게 쓴 브런치 글이 생각지 못한 책 출간에 이르렀듯이 나의 꾸준한 글쓰기는 10년 후 20년 후에 나에게 어떤 것을 선물할지 모른다. 현재 삽질 같은 글쓰기를 꾸준히 하기 위해서는 그리고 중간중간에 들이닥칠 허들을 뛰어넘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것’을 기대할 수 있는 능력,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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