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격하지 못했다고 실망하지 마세요
도서관 비정규직 채용이야기
도서관 사서가 하는 일은 책 바코드를 찍는 게 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아는 직원은 누가 손으로 바코드 찍는 흉내를 내며 “삑삑~ 이거 하시는 거죠?”라고 물어봤다면서 나에게 열을 냈다. 이 직원은 다른 도서관에서 나랑 같은 업무를 맡고 있어 자주 연락했던 사이다.
사서들이 기피하는 잡다한 행정업무를 하는 자리를 견디는 동지로 쉴 새 없이 내려오는 공문을 어떻게 처리할까 상의하고 욕도 하면서 서로를 지탱해 주고 있었다. 숫자에 약한 한 내가 도서관 통계를 내야하고 예상할 수 없는 공문이 수시로 내려오는 상황은 계획하기를 좋아하는 나에게는 시련이었다.
내가 지금까지 도서관 다니면서 두 번째로 힘든 시기였고 (첫 번째는 도서관에 딸린 수영장, 헬스장 관리) 미치지 않기 위해 하루하루 달력에 엑스표를 치면서 인사발령 나는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그 당시 했던 여러 업무 중에서 비정규직 채용업무도 만만치 않게 나를 힘들게 했다. 지금 다니던 도서관 바로 전이니 2년 전 일이다. 그때는 주말 단시간 근로, 개관연장근로, 대체직(출산휴가 등)이 있었다. (지금은 개관연장사업 종료로 주말 단시간 근로와 단기 대체직만 있다)
채용을 하기 위해선 우선 채용공고문을 만들고 홍보한다. 접수된 입사지원서를 정리하여 서류심사위원회를 연다. 결과 보고서를 작성한다. 서류 합격자에게 일일이 전화한다. 시간을 조정하고 면접전형을 안내한다. 2차 면접전형 실시 후 결과 보고서를 만든다. 최종 합격자에게 구비서류 안내하고 행정 지원과에 채용의뢰한다.
이렇게 써보니 몇 줄로 끝나지만, 채용공고문을 낼 때 수시로 변하는 법규 및 양식을 검토해야 하는 데 행정업무에 낯선 나는 이게 맞는 건지 틀린 건지 알 수가 없어 두려웠다. 무엇보다 채용은 민감한 부분이기 때문에 합격자를 뽑는 데 고려되는 사항을 모든 항목으로 점수화하여 구체적, 객관적 근거를 남겨야 한다.
채용 한번 하는데 공문서 기안을 5번 이상을 하는 것 같다. 지원자별로 점수를 내야 하기 때문에 5명 뽑는데 서류 원서접수가 100건이 넘으면 언제 다 처리하나 한숨이 절로 나온다. 그뿐 아니라 면접 당일 면접관의 생수와 필기도구를 챙기는 것부터 처음 방문하는 면접자를 위한 장소 안내 화살표 붙이기까지 사소하게 신경 쓸 것도 많다.
채용 업무란 기본적으로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다 보니 상처도 받는다. 도서관 바로 앞 아파트에 살기 때문에 본인이 적임자라고 주장하시며, 바코드 찍고, 책 꼽는데 왜 사서 자격증이 소지자 우대냐고 계속 따지시는 분, 면접 보러 멀쩡하게 왔다가 면접 후 기분이 상하셨던지 나가면서 “미리 짜고 치는 고스톱이지? 내 그럴 줄 알았어”라고 폭언을 날리고 유유히 사라지시는 분도 있었다.
도서관 비정규직이 짧은 기간 동안만 할 수 있는 일이다 보니 알바 목적의 대학생, 풀타임 잡을 얻기 부담스러운 공무원 시험 준비생, 혹은 단순 호기심에 지원하는 경우도 있지만 절실하게 도서관 문을 두드리는 경우도 꽤 된다.
나는 갖은 스트레스로 시들어 가는 데 절박하게 들어오고 싶어 하는 분들을 볼 때면 추리닝 입고 출근하는 것처럼 어색하고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밝은 목소리로 안내하는 내가 어둠 속에서 몸부림치고 있다는 것을 상상이나 할까?’
가장 일선에서 접촉하는 나의 말과 행동이 도서관 첫 이미지라고 생각하여 최대한 친절하려고 노력했다. 최종 합격한 지원자가 나의 친절한 말투가 인상적이었단 말을 여러 번 들었을 정도였다.
많은 지원자 중에 특히 기억에 남는 한 분이 있다. 그분은 5년 동안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봉사와 여행을 하다가 최근에 입국하셨다고 한다. “제가 많은 나라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며 제 자신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았습니다. 그 결과 저의 꿈을 도서관 사서로 결정하였습니다.”
절실함과 진정성이 내 가슴속을 파고들었다. ‘와~~ 저렇게 자유롭게 사시는 분도 있구나~’ 부러웠다. 그런데 수많은 경험과 고민을 한 결론이 고작 여기라고???’ 달력에 하루하루 엑스 치며 견디고 있는 나의 현실과 대비되어 머리가 멍해졌다.
누군가 절실하게 벗어나고 싶어 하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절실하게 원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게다가 절실함만 가지고는 목표나 꿈을 이룰 수 없었다. 그 지원자의 절실함은 모두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지만 도서관 경력이 없다는 이유로 안타깝게 채용되지 못했다.
내가 3년 동안 비정규직 채용을 담당하면서 느낀 점은 합격에 운이 많이 작용한다는 거다. 보통 계약단위가 1년이기 때문에 대부분 도서관이 12월 말에 많은 인원을 뽑는다. 시기가 예상된 모집이므로 지원자도 많다. 다른 기관에서 계약 만료되시는 분들도 이때 대거 지원한다. 경쟁률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어떤 해는 다른 기관에 중복 합격한 사람이 생겨 대거 빠져나가는 일도 있었다. 이로 인해 불합격되어 실망하다가 뜻밖에 합격 전화를 받으시는 분들도 생긴다.
“안녕하세요. xx 도서관의 xxx입니다. 기 합격하신 분이 포기하셨어요. 차점자로 주말 단시간 근로자 전형에 최종 합격하셨습니다” “어머나, 정말요? 감사합니다” 흥분으로 떨리는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덩달아 나도 행복해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건 항상 기쁜 일이다.
개인 사정으로 중간에 그만두는 분 빈자리나, 출산휴가 대체식처럼 수시로 모집을 하는 경우도 많다. 누구를 뽑아야 할지 혼란스러울 정도로 우수한 지원자가 몰리는 경우도 있고, 마땅한 지원자가 전혀 없는 경우도 있다. 한 번은 경력이 전혀 없는 의외의 공대생이 뽑히기도 했다. 세계여행 다녀오신 분이 지원할 때는 타이밍이 안 좋았던 것이다.
‘한번 떨어지셨다고 포기하지 말세요~, 계속 지원하면 합격하실 수 있어요’
차마 하지 못한 말이 입가에서 맴돌았다. 도서관 업무 특성상 채용되자마자 바로 현장에 투입되어야 하므로 경력자를 선호한다. 경력도 없는데 나이까지 많으면 진입 문턱이 높아지긴 하지만 불가능한 건 아니다. 수시 모집할 때 운 좋게 들어왔다가 이것을 경력 삼아 정규직 자리로 옮기는 경우가 꽤 있다.
현재 내가 근무하는 어린이자료실에서 그림책 읽어주는 봉사를 해주시는 분이 있었다. 나이는 나와 비슷한 40대 중반으로 보는 사람까지 기분 좋아지는 화사한 미소가 매력적이다. 봉사활동도 열심히 해주셔서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작년 말에는 우리 도서관 주말 단시간 근로자 채용에 지원하셨다.
2018년까지 채용담당자였던 나는 작년에는 4명의 면접관 중 한 명이 되어 최종 면접을 심사하게 되었다. 봉사해주셨던 지원자는 도서관 근무경력은 없었지만 다양한 관련활동 및 성실성으로 최종 합격하였다. 몇 달 전쯤인가 어린이 자료실에 상기된 얼굴로 찾아오셨다.
“저 도서관 사서 정규직에 합격했어요. 도서관에서 뽑아주신 덕분에 경력이 있어서 합격한 것 같아요. 너무 감사해요. 경쟁이 치열했는데, 제가 어떻게 합격했는지 모르겠어요. 가족들도 너무 좋아해요. 행복해요”
“어머나! 축하드려요. 저도 기뻐요. 도서관에 대한 애정과 열정으로 합격하신건가봐요!!”
도서관에서 일하실 때도 20대 못지않은 체력과 열정에 노련함과 푸근함까지 갖추신 분이라 정말 잘 뽑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역시나 노력하는 분은 되는구나 싶었다. 나랑 나이가 비슷한 분이 힘든 경쟁을 뚫고 합격하셨다고 하니, 나이가 꿈을 이루는데 장애가 되지 않는다는 점,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며 계속 문을 두드리면 언젠가는 열린다는 생각에 나까지 마음이 들뜨고 따뜻해졌다.
도서관 주말 아르바이트하다가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여 들어온 직원이 있다. 아르바이트하는 동안 직원을 바라보면서 나도 합격하면 저런 생활을 하겠구나고 상상해보았다고 한다. 하지만 막상 들어와 보니 생각과는 너무 다르다며 한숨을 쉬었다. 반대로 생각하면 내가 부러워하는 직업도 그 속 사정은 알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의 떡이 한없이 커 보이지만 오늘은 내 손에 쥔 떡을 다시 한번 유심히 보고 애정을 주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