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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검 Dec 25. 2021

D+7 중국 호텔방 격리

루틴 찾기

호텔 방 격리 28일


중국 지역마다 차이가 있지만 내가 있는 곳은 28일간의 격리, 28일간의 관찰 기간을 둔다. 관찰 기간은 PCR 검사를 정기적으로 하는 기간으로 외출은 가능하다. 외출 절대 금지인 격리는 앞의 28일이다. 28일도 3일 입국지(상하이) 호텔, 11일 (거주/출장) 지역 호텔, 14일 자가 격리로 구성되나 나와 같이 아직 중국에서 자가가 없다면 3일 입국지 + 25일 지역 호텔 격리를 해야 한다. 한 방에 갇혀 25일을 지내기. 내 인생에서 없던 도전이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


죄수들도 하루에 한 번 산책을 한다는데.. 이런 볼멘소리를 할 필요가 없다. 중국에서는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일이 다반사다. 방 안에서 멍하니 중국 공영방송 CCTV를 바라본다. 미국, 영국, 때로는 한국의 코로나 확진자 추세를 실시간으로 전한다. 미국, 유럽에서의 하루 신규 확진자가 수만 명, 이에 비해 중국은 수십 명 수준, 중국이 얼마나 안전한지를 반복해서 설명한다. 


说三道四 


중국 뉴스에서 미국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인권을 핑계로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내정간섭을 결연히 거부한다는 내용이 하루에서 몇 번씩 반복된다. 미국 자기 인권 문제나 잘 관리하라며 미국은 더 이상 说三道四하지 말라고 외교부 대변인이 말한다. 사전을 얼른 찾아본다. '제멋대로 지껄이다'라는 뜻이란다. 문맥을 통해 외웠으니 쉽게 까먹지 않겠다. 중국 뉴스를 더 보다가는 중국인이 되버릴까 싶어 다른 할 일 거리를 찾는다. 


루틴 = 안전감


인간이 일, 월, 년, 세기 등 반복과 주기의 개념을 만든 것은 그것이 우리에게 안정감을 주기 때문이다. 내일은 또 내일의 해가 뜨겠지.. 아니라면 얼마나 당황스러울까. 평일 낮 회사에서 업무, 저녁에 회사 동료 또는 가족과 식사, 가끔 운동, 자기 전 아이 숙제 봐주고 자기. 한국 생활 루틴이다. 갑자기 모든 것이 사라졌다. 시간은 많고 할 일은 없다. 새로운 루틴을 찾는다. 


8시에 컴퓨터를 켠다  


회사 근무시간인 8시에 회사 네트워크에 접속한다. 통상적인 정보 공유 메일 이외에 업무 요청 메일이 없다. 당황스럽다. 아침에 메일을 보며 무엇부터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해야 하는데 말이다. 가져온 중국어 책, 요청해서 받은 해외법인 소개 자료를 읽는다. 시간이 안 간다. 


한국에서 아내가 챙겨준 카누 하나를 꺼낸다. 모닝커피가 큰 힘이 된다. 영화 올드보이가 생각난다. 그때 오대수는 그 방에서 시간을 어떻게 보냈을까. 


밥이 왔다


밖에서 음악과 함께 중국어 방송이 들린다. "문 앞에 도시락을 갖다 놨으니 나와서 가져가세요". 방송 소리가 작아지기 시작한 후 30초 후쯤 문을 열어 탁자 위에 놓인 도시락을 챙긴다. 그래야 우주복을 입은 배식하는 사람과 눈을 안 마주칠 수 있다. 당연하지만 중국 요리다. 다이어트 성공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쨌든 시간은 간다


중국에서는 구글, 유튜브, 카카오톡, 페이스북, 넷플릭스가 안된다. 중국에는 그런 속담이 있다. 위에 정책이 있으면, 아래에는 대책이 있다.. 되는 것도, 안 되는 것도 없는 중국이다. 내가 좋아하는 역사물을 보기 시작한다. BBC에서 만든 일본 사무라이 시대 다큐멘터리다.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로 이어지는 전국 시대 중심인물에 대한 이야기이다. 임진왜란도 잠깐 나오는데 이순신 없이 뚱뚱한 곽재우만 잠깐 나온다. 뚱뚱한 곽재우와 부하들은 열 명 남짓. 이순신을 소개하기에는 BBC도 예산이 부족했나보다 생각한다. 일본 입장에서도 임진왜란은 실패한 전쟁으로 묘사된다.


유일한 낙은 가족과 영상 통화


한국 시간 저녁 9시는 가족과 영상 통화를 하기로 한 시간이다. 중국 시간 8시니 저녁을 먹고 조금만 기다리면 된다. 아들은 낮에 있었던 일을 재잘재잘 설명을 한다. 영상을 바라보며 이 귀여운 녀석, 누굴 닮아 이렇게 귀엽지 생각을 한다. 아내가 미리 사진으로 보내준 수학 숙제, 국어 숙제 채점 결과에 대해서 몇 다지 말을 한다. 틀린 수학 문제가 많으면 Zoom 화이트보드를 통해 칠판에 써가며 설명을 한다. 편리한 세상이다. 아내에게 한국 근황, 내 호텔 생활에 대해 이야기한다. 한 시간이 훌쩍 지난다. 


이제 정리하고 잘 시간이다. 자기 전 금단의 영역, 유튜브에 다시 손을 댄다. 멍하니 Military Home Coming 동영상을 보고 있다. 미군이 오랜만에 가족을 만나는 감동적인 장면 모음이다. 내 의식이 느끼는 것보다 가족을 더 그리워하는 것 같다. 아직 갈 날이 많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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