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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검 Dec 19. 2021

메르켈 리더십

16년 장기 집권


군사 독재를 경험한 우리나라 사람들을 장기 집권에 대한 거부감이 크다. 미국 대통령은 4년 연임제이지만 우리나라는 아직도 5년 단임제이다. 


독일은 총리직 연임에 제한이 없다. 메르켈은 4연임 총리로 2021년 9월까지 16년 동안 독일을 이끌었다. 하지만 독일에서는 누구도 그를 독재자라고 비판하지 않는다. 독일에서 유학한 경험이 있는 유시민 작가는 메르켈 같은 사람이라면 20년, 30년 장기 집권해도 아무 문제없다고 평한다. 지금과 같이 건전한 시민 사회가 감시와 견제를 할 수 있다면 말이다.  


메르켈은 오바마와 같은 달변가도, 시진핑/푸틴과 같은 강력한 지도자도 아니다. 사실을 중요시하는 과학자이고, 실리와 합의를 중시하는 정치인이다. 독일 정치판에서 '정치'를 빼고 '정책'만을 남긴 혁명가이다.  


사실 중심


메르켈은 동독 출신 과학자로 양자 화학 박사다. 헬무트 콜 총리의 신임을 받아 여성청소년부 장관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동독 출신, 여성이라는 '소수자' 백그라운드가 유효했음을 자신도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국민이 그를 선택한 것은 단순히 소수자 그룹에 속했기 때문은 아니다.


자극적인 이야기로 이데올로기, 감수성에 호소하는 일반 정치인과 달리 그는 사실과 논리로만 말한다. 총리 연설문에 "다소 시적인 표현을 넣으시죠" 참모의 조언에 "나는 시인이 아닙니다"라고 대답한다. 동료는 메르켈이 '형용사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라고 설명한다. 상황을 과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전달한다. 그럼에도 동료에 비해 두 배나 많은 정보를 쉽게 전달한다. 사람들은 그를 신뢰한다.  


실리 중심


메르켈은 이데올로기나 도그마를 고집하는 사람이 아니다. 마음이 맞는 사람이라면 누구와도 연대하고, 좋은 아이디어라면 출처를 가리지 않고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그가 이끄는 기독교민주연합은 기독교사회당 등 다른 정당과 연정을 하여 국가를 이끈다.  


대중국 정책도 마찬가지이다. 독일과 중국은 문화적, 이념적 공감대가 없다. 독일은 이전 장개석 국민당 정부를 군사적으로 지원했다. 2차 세계대전에서도 독일과 중국은 반대편에 있었다. 하지만 메르켈은 중국과의 경제 협력을 중시하여 인권 문제 등을 제한적으로 다룬다. 중국을 자주 방문한 유럽 총리로도 유명하다. 중국에서 외제차 중 가장 많이 팔리는 것이 폭스바겐, 벤츠, 아우디, BMW와 같은 독일 차들이다. 


합의 중심


"인생에 두려워할 것이 하나도 없다. 이해할 것만 있을 뿐이다."


마리 퀴리가 한 말이다. 메르켈이 가장 좋아하는 말이기도 하다. 합의를 도출하기 위한 메르켈의 인내와 차분함은 놀랍다. 유럽연합은 독일과 프랑스가 주도한다. 메르켈은 서방세계를 주도하면서도 시진핑뿐만이 아니라 푸틴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 


푸틴은 동독에서 정보원으로 활동한 경험이 있어 독일어를 할 줄 알고, 메르켈은 동독에서 러시아어를 배웠고 러시아 경시대회에서 수상하여 모스크바에 간 적도 있다. 푸틴이 서구가 러시아에 안겨준 불만들에 대해 줄줄이 늘어놓으면 메르켈은 마냥 듣는다. 경청은 치유 효과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고는 한 마디를 한다. "블라디미르, 다른 나라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그런 시각은 당신의 이익에 도움되지 않아요" 


메르켈이 화를 내는 모습을 본 사람이 없다. 실망, 놀라움, 좌절 어떤 감정이든 그가 보인 최대의 반응은 눈썹이 약간 위로 추켜올리는 것이다. 감정에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는다. 사실과 실리 중심으로 합의안을 끌어내는 데 모든 에너지를 쏟는다. 그리스 구제 금융, 시리아 난민 수용 등 유럽연합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굵직굵직한 결정들이 메르켈의 인내와 차분함, 합의를 위한 집요한 노력의 결과이다.  


그런 리더를 뽑는 독일 국민


국민은 자신 수준에 맞는 지도자를 갖는다. 처칠의 말이다. 메르켈은 우리 기준으로 보면 참 재미없는 정치인이다. 화려한 언변도, 뚜렷한 이데올로기도, 눈이 똥그래지는 혁신적인 정책도 없다. 매 이슈에 그저 실리적, 합리적인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메르켈이 이끄는 당의 모토는 "우리는 문제의 답을 찾을 겁니다"였다. 판을 뒤집는 혁신적인 변화보다는 모든 사람들이 수용할 수 있는 점진적인 변화를 이끈다. 


그런 총리를 네 번이나 뽑은 독일 사람들 역시 참 재미없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 재미없음이 독일의 힘이다. 사실, 실리, 합의를 중시하는 독일 사람들은 그런 총리를 네 번이나 뽑았고 그 사람은 유럽에서 가장 존경받는 리더로 퇴장했다. 내년 대선이라는데 우리는 어떤 리더를 뽑을 것인가. 


※ 이미지 출처 : B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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