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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리남 Sep 09. 2020

만약 사람이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면?

소설 <아몬드> 리뷰

https://youtu.be/-xjc_YBIwXU

사람은 이성과 감정을 지닌 동물입니다. 그런데 만약 사람이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실제로 이런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알렉티시미아, 감정을 언어적으로 표현하거나 인식하는데 있어서 장애가 있다는 그리스어 합성어입니다. 한국어로 번안하면 ‘감정표현불능증’입니다. 1970년대 처음 학계에서 보고된 사례로서 이 증상이 있는 사람들은 감정을 담당하는 뇌의 부분인 편도체가 매우 작은 사람들로서 공포나 두려움 등을 느끼지 못하고 웃는 얼굴과 슬픈 얼굴을 구분하지 못합니다.

     

여기 한 아이가 있습니다. 이 아이는 어릴 때부터 감정이라는 것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는 어머니에게 감정을 ‘교육’받습니다. 자연스레 느끼는 것이 아니라 교육받는 것이지요. 이럴 때는 웃어야하고, 이럴 때는 미안하다고 사과해야한다 등의 교육을 말이죠. 하지만 어머니의 교육도 크게 성과는 없었습니다. 아이는 주변 또래 친구들에게 이미 이상한 아이로 찍혔고 자연스레 튀는 아이로 인식이 되었지요.     


그러던 중, 크리스마스 이브, 이 아이의 16번째 생일에 사고가 일어납니다. 아이는 유일한 가족인 어머니와 할머니와 외식을 하고 나오는 길에 묻지마 살인 사건을 당하게 됩니다. 그 결과 할머니를 잃게 되고, 어머니는 뇌사상태가 됩니다.  혼자 남겨진 이 아이의 이름은 선윤재입니다. 이 윤재가 겪게 되는 일들을 그려낸 소설, 감정표현불능증을 지닌 한 소년의 이야기 아몬드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진짜 괴물은 누구인가?     


크리스마스 이브의 묻지마 살인사건 이후 윤재, 엄마, 할멈의 작은 세계에서 윤재는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됩니다. 윤재는 “할멈과 엄마의 부재로 알게 된 건 세상에 다른 사람도 존재한다는 거였다.”라고 고백합니다.

     

여기서의 ‘다른 사람’은 여러 인물이 있지만 이야기의 가장 중요한 인물은 ‘곤’이라는 아이입니다. 곤이는 누구인가 하면 윤재의 반 친구, 작지만 <내일의 죠>의 죠와 같이 팔 다리가 긴 친구, 사고를 치고 전학을 온, 살인 빼고는 다 해봤을 것이라는 소문이 도는 문제아, 어릴 적 부모를 잃어버려 입양과 파양을 반복해온 아이, 아내를 위로하려 윤재를 아들이라고 속인 윤교수의 진짜 아들(본명: 윤이수)입니다. 

    

윤재는 이런 곤이의 역할을 대신하게 됩니다. 곤이를 잃어버려 마음의 병을 얻어 죽어가는 곤이의 어머니를 만나 아들의 역할을 대리로 하게 됩니다. 실제 곤이의 아버지인 윤교수는 뭔가 삐뚤어지게 자란 곤이를 아들로서 아내에게 보여줄 수 없었기 때문에 곤이 대신 윤재를 선택했던 것입니다. 윤교수에게는 곤이가 어딘가에서 잘 자라났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내의 마음에 더 평안을 줄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겠지요. 

    

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곤이는 윤재를 괴롭힙니다. 하지만 우리가 알다시피 윤재는 감정을 느끼지 못해 그다지 고통스러워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곤이는 이러한 윤재의 모습을 견디지 못합니다. 곤이는 사실 작은 곤충조차 죽이는 것을 힘겨워하고 괴로워하는 감정이 풍부한 아이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소각장에서 윤재와 결판을 내겠다던 곤이는 윤재를 심하게 폭행하지만 더는 어쩌지 못하고 구경을 나온 모든 아이들에게 적개심을 내뿜습니다. 이 사건 이후 곤이도 윤재처럼 혼자가 됩니다. 결국 윤재와 곤이 둘 다 모두의 적이 됩니다.     


윤재의 어머니의 말을 빌리자면 공동체 생활에는 항상 희생양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윤재와 곤이가 바로 이 공동체 생활의 희생양이 되 버린 것 이지요. 이런 상황에서 곤이는 윤재의 감정표현불능상태를 알게 되고 이 둘은 윤재의 헌 책방에서 우정을 쌓아가게 됩니다.     


윤재는 곤이를 괴물이라고도 부릅니다. 그리고 앞서 윤재의 할머니는 윤재를 ‘예쁜 괴물’, ‘귀여운 괴물’ 이라고도 부릅니다. 윤재는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아이이고 친구들 사이에서 이상한 아이, 혹은 병신으로 취급받습니다. 곤이는 문제아적인 성격 때문에 친아버지에게도, 친구들에게도 결국 외면당하는 존재입니다.  

   

윤재는 감정이 없어 오히려 편견 없이 곤이를 바라보기에 곤이에게는 가장 편안한 안식처가 되는 아이러니함이 있습니다. 이는 바꿔 말하면 공감할 수 있고감정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곤이를 편견과 차별적인 시선을 통해 바라본다는 것을 소설은 지적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또 앞서 묻지마 살인사건에서 그 누구도 그 살인범을 막아서지 않아서 윤재는 어머니와 할멈을 잃었습니다. 이 소설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느끼지만, 느낀다고도 말하지만 실제로 행동하지 않고, 바로 옆에서 고통 받는 이들을 외면하는 진정한 ‘공감 불능’인 사람들을 지적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할멈에 의해, 또 윤재에 의해, 또 주변인들에 의해 이 두 사람은 괴물이라 불리지만 사실 진짜 괴물은 공감하지 못하고 따뜻한 손길 한번 건네지 못하는 사람들이 괴물이 아닐까요?      

    

그 외의 이야기들     


2017년 출간된 이 작품은 문학 부분에서 여전히 베스트셀러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공감이라는 키워드로 읽어내려 갈 수 있는 이 소설은 여전히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이야기에서 주인공 윤재에게 감정을 일깨워주는 또 다른 중요한 인물로 도라라는 인물을 꼽을 수 있습니다. 윤재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을 가르쳐주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어찌 보면 그 사랑에 빠지는 과정이 너무 단순하게 표현된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하지만 또 다르게 생각해보면 이내 사춘기의 사랑이 사실은 그렇게 복잡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이상 소설 <아몬드>의 리뷰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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