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같은 반 진섭이 놈을 두드려 팬 덕에 손가락이 시큰거렸다. 부러졌다면, 아마 이마에 부딪혔을 때였을 것이다. 학교에는 나에 대한 악의적인 소문과 근거 없는 얘기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돌았다. 룸살롱에서 일하다가 마주친 진섭이 놈 때문이었다. 어쩌다 한 번 학교에 나갈 때면 애미애비 없는 놈. 창놈. 몸 파는 새끼. 라는 소리가 귓등 너머로 들렸다. 그다지 신경 쓰고 싶지는 않았다. 반쯤 맞는 말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내겐 어린애들이 멋모르고 지껄이는 소리보다 내일의 굶주림이 더 무서웠으니까. 돈 없는 삶은 지옥이었다. 내겐 그것으로부터 나를, 우리를 지켜줘야 했을 부모가 없었다.
지옥은 전생에 악한 짓을 많이 한 자가 그 과보로 태어나는 곳이라고 했다. 내 짧은 생에 그런 죄를 지었을 리가 없으니, 아마 태어나기 전에 지은 죄 때문이거나 태어난 것 자체가 지옥에 떨어져 마땅한 죄였을 것이다. 지옥은 타락한 것들이 모이는 곳이다. 내가 사는 단칸방과 룸살롱의 식구들은 나의 와이셔츠를 정성껏 다렸다. 옷걸이에 가지런히 걸려있는 와이셔츠를 보면서, 나는 죄와 지옥과 사랑과 부모에 대해 고뇌했다. 지옥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었’다.
원해서 떨어진 사람과 나처럼 영문도 모른 채 떠밀려 온 사람들이 그것이다. 후자의 경우 대부분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거나, 그들에게 물들었다. 물들고 나면 어느샌가 식구들이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짜식, 잘 적응 했네” 라고 말하곤 하는 것이다. 어중간하게 버티고 서 있는 것은 나뿐이었다. 그들은 구태여 나를 물들이려고 하지 않았다. 나를 구렁텅이로 떠미는 것은 오히려 등 뒤의 세상이었다. 그들은 꼭 나를 떨어뜨리지 못 해 안달이 난 것처럼 보였다.
고지서와 세금과 눈과 동정으로 낭떠러지에 선 내 등을 찌른다. 빳빳하게 다린 와이셔츠에 피가 묻었다. 진섭이 놈의 코피였다. 널브러져 있는 놈의 귀를 물어뜯을까 하다가, 참기로 했다.
보희 누나의 걱정스러운 얼굴이 눈앞을 아른거린다 싶을 때, 몇 번인가 얼굴을 본 적이 있는 담임선생이 달려와 멱살을 잡았다. 그의 눈이 꼭 내게 ‘애미애비 없는 놈’ 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나는 그의 눈에 묻고 싶었다. “나는 잘 적응하고 있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