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어릴 때부터 집에 붙어있기보다는 돌아다니기를 더 좋아했던 내가 신림 고시촌에, 일명 '잠 자는 방'에 들어온 것은 어쩌면 정해진 운명 같은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새로 받은 열쇠를 구멍에 밀어 넣는 순간 말 그대로 잠만 잘 수 있을 만큼의 공간이 내게 주어졌다. 누군가는 이 방을 보고 서러워서 울었다던데, 내겐 딱 이 정도의 공간이 알맞다. 온전히 나로 채울 수 있는 공간. 가지고 나온 캐리어 외에 짐은 없었다. 옷 몇 벌과 수건 몇 장, 노트북과 책 몇 권, 필기도구, 노트 따위가 좁은 방 가운데서도 혼잡하게 놓여있다.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이 좁은 공간이 아무리 맘껏 혼잡하더라도 나를 잃어버리지 않을 수 있다는 자신이 들었다. 옆방에서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리기에 작게 노크를 했다. 문을 열어달라 거나, 함께 중얼거리고 싶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녀도 그 사실을 알고 있는지 중얼거리는 소리는 곧 멎었다. 쿵 쿵. 대신 작게 벽이 울었다. 마찬가지로 들어오고 싶다는 뜻은 아니었을 것이다. 산책을 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방에 들어온 지 채 세 시간이 되지 않은 때였다. 냉장고가 없었으므로 배를 채우기 위해서는 개미굴 같은 골목길로 나서야 하는 것이다. 앞으로 한동안 신세를 져야 할 곳이니까. 하는 마음으로 가볍게 걷기로 했다. 9월이 됐음에도 밤, 낮을 잃은 매미가 시끄럽게 울었다. 매미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뜬금없게도 윤을 떠올렸다. 작년 여름 함께 걸었던 거리와 함께.
"어, 매미다. 올해는 매미소리를 많이 못 들었어요. 기분 탓인가?"
그때 윤의 시선은 건너편에 서 있는 나무 언저리를 향해 있었는데, 아마도 매미소리는 그곳에서 나고 있었다. 윤의 시선이 닿아있는 곳을 눈으로 좇았다. 아, 그때의 나는 윤이 보는 것, 듣는 것, 느끼는 것에 그만큼이나 집착하고 있었다. 같은 나무를 보고 있다고 생각했을 때. 그녀는 이미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하늘. 하늘이었다. 반보다는 조금 더 살이 오른 달은 꼭 그녀의 눈 같았다. 항상 눈물이 고여있는 것처럼 촉촉한 것까지 닮았다.
무심코 위를 올려다봤지만, 그곳에는 건물 사이로 가느다랗게 찢어진 하늘밖에 없었다. 꼭 천정 벽지 같은 모습으로 머리를 덮고 있는 하늘은 검은색인지 남색인지 모를 색을 했다. 굽이진 골목길을 한참을 더 걷고 나서야 달을 올려다볼 수 있었다. 반보다는 조금 더 살이 오른 달이었다.
현관문을 여는 소리가 요란스러웠는지 옆집 여자가 문을 열고 고개를 빼꼼히 내밀었다. "아, 안녕하세요." 그녀는 나의 말에 대답을 하는 대신 고개만 까딱이고는 나의 것과 같은 구조로 되어 있을 방으로 몸을 숨겼다. 현관으로 들어서서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듣고 나서야 나는 안도할 수 있었다. 낯설지만 익숙한 빈 집의 냄새가 난다. 신기한 일이었다. 빈 집의 냄새는 어디서든 비슷비슷한 농도를 가진다. 매트리스에 앉아 손에 잡히는 책 한 권을 집어 들었다. 손을 많이 탄 시집이었다. 두, 세 페이지를 넘겼을 때 벽 너머로 작게 "안녕하세요." 하는 소리가 들린다. 내게 건넸다기보다는 혼자서 곱씹는 것 같은 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