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목소리가 작은 영과 대화를 할 때면 나는 온 신경을 그녀의 목소리를 듣는 일에 집중해야만 했다. 사방에서 섞이는 소란으로부터 그녀의 목소리를 구별하는 일은 꽤 즐거운 일이기도, 에너지를 소비하는 일이기도 했는데 사실은 그 행위 자체가 나로 하여금 그녀를 생각하게 만드는 일임을 그때의 나는 알지 못했다. 바쁜 와중에 핸드폰이 운다. 아, 그러고 보니 그녀와 울음소리에 관한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동물의 울음소리를 왜 하필 '울음'이라고 명명했을까 하는 식의 미지근한 대화였다. 영과는 종종 그런 대화를 했다. 어원이라든가 기원이라든가 남들은 관심 없을 작은 단어 같은 것들에 관한 얘기. 전화번호를 확인하기도 전에 나는 이미 영을 떠올리고 있었다. "여보세요?" 나도 모르게 목소리에 물음표를 붙였다. '웬일이야?'라는 물음이 나도 모르게 묻어 나온 것이다.
전화번호를 교환한 이후로 처음하는 통화였다. 전화번호를 줄 때나 마주 앉아 얘기를 나눌 때도 결코 이렇게 갑작스럽게, 게다가 새벽 한시에 전화가 올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응. 뭐 해요?" 수화기를 통해 듣는 영의 온전한 목소리는 조금 더 다정할 때도, 조금 더 차가울 때도 있었다. 담벼락에 기대어 서서 그녀의 목소리가 갖는 온도에 관해 생각을 했다. 처음 듣는 웃음소리, 처음 듣는 다정한 말들. "나는 원래 잘 웃지 않는 사람이에요." 뜬금없게도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우리가 이틀 뒤에 만나기로 했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우리는 종종 별다른 목적 없이 만났다. 그리고 목적 없는 만남이 목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그 사실 하나에 기대어 영이 가지고 있을 애정 같은 것들을 굳이 상상해냈다. 차가운 가운데서도 따듯한 것 하나 정도는 품고 있을 거라고, 무책임하게 바랬다. 정신을 차리고 비참해지는 일이 반복되면서, 나는 정신을 차리는 행위를 멈추기로 했다. 전화를 끊고 골목길을 서성이면서 곳곳에 떨어진 영의 목소리를 줍는다. 사랑일까. 하는 생각 때문에 어깨가 절로 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