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도서 인쇄 감리를 간 날

마음을 다해 사랑했던 것들은 우리에게

by 부크럼


7월 20일에 출간된 토마쓰리 작가님의 책 <마음이 힘들 땐 고양이를 세어 봐>는 입사 이래로 가장 즐겁게 작업했던 책이다. 출근해서 디자이너님이 작업해주신 내지 파일을 클릭하면, 컴퓨터 모니터 한가득 귀여운 그림과 따뜻하고 용기를 주는 글이 펼쳐지는 나날이었다. 평소 내 취향은 모던하고 심플한 쪽에 가깝다고 생각했는데, 매일매일 귀여운 걸 들여다본다는 게 이렇게 짜릿한 일일 줄이야.


마음을 담아서 작업했던 책이기에 디자이너님과 함께 인쇄 감리도 갔다. 인쇄 감리는 컴퓨터 화면으로만 보던 색이 실제로 종이에 인쇄될 때 발생하는 미묘한 차이를 잡기 위해, 계속 프린트를 해 보며 원하는 색깔을 맞춰가는 작업이다. 에디터인 내 업무와는 사실 무관하기 때문에 그동안은 마감이 끝나면 사무실에서 보도자료를 작성하거나 다음 책 원고를 읽어보곤 했다. 인쇄소는 어떤 곳일까? 디자이너님이 감리 가실 때마다 내심 궁금했는데 드디어 그 궁금증이 풀리는 날이었다.


인쇄소는 파주 출판단지 안에 있었다. 디자이너님 성함과 인쇄소 이름이 같아서 내심 이런 연결성이 재밌다고 생각했는데, 또 다른 징조를 발견하곤 좋은 예감이 들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내가 가장 먼저 본 건 인쇄소 앞을 어슬렁거리는 고양이였다. 회색 털에 짙은 검정 줄무늬가 있는, 작은 고등어 고양이. 그 친구는 우리를 발견하자마자 커다란 인쇄소 대문 뒤로 황급히 몸을 숨기더니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그 옆으로 황치즈빛깔 아기고양이 한 마리가 무슨 일이냐는 듯 어슬렁거렸다. 하나, 둘… 두 마리구나. 무심코 세던 중, 웃음이 났다.


우와, 나 지금 고양이를 세고 있잖아? <마음이 힘들 땐 고양이를 세어 봐> 감리를 온 날, 인쇄소에 도착하자마자 제일 먼저 한 일이 고양이를 세는 것이라니!


일러스트가 가득한 책이라서 감리가 오래 걸릴 거라고 생각했지만, 인쇄소에서는 거대한 기계로 단번에 척척 예쁜 색을 뽑아 주셨다. 디자이너님이 어떤 색이 진했으면 좋겠다, 이 정도로 나왔으면 한다, 보여드리면 기장님은 어떤 판을 만지면서 숫자를 조절해주셨다. 그러면 옆에 놓인 큰 기계에선 큼지막한 종이에 인쇄된 시안이 뽑혀 나왔다. 대기실에서 기다리다가 전화가 오면 나가서 인쇄물을 보는 과정의 반복이었다. 어떤 일러스트 책은 하루 안에 감리가 끝나지 않아서 두 차례나 인쇄소에 방문했던 적도 있다고 하셨는데 이번 책은 순조롭게 끝낼 수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내내 내리던 비구름이 걷히고 오랜만에 푸른 하늘과 뭉게구름이 보였다. 이렇게 또 한 권의 책을 상큼하게 마무리한 우리 팀에게 주는 선물 같은 하늘이었다. 여러모로 기특한 책이다.


이번 도서의 제목을 정할 때, 가제로 100개 넘는 문장을 뽑았다. 책 속에 있는 작가님의 문장, 작가님의 문장을 조금 변형한 문장, 에디터인 내가 아예 새로 쓴 문장도 있었다. 엄선하고 엄선해서 고른 제목 <마음이 힘들 땐 고양이를 세어 봐>는 토마쓰리 작가님의 원고에서 고스란히 발췌해 온 문장이다. 작은 친구들이 오밀조밀 모인 이 책의 일러스트와 가장 잘 어울리고 메시지도 분명해서, 작가님 및 도서 팀의 만장일치로 뽑히게 되었다.


제목을 정해놓고 곰곰이 생각해 봤다. <마음이 힘들 땐 고양이를 세어 봐>라는 제목이 독자분들에게는 어떻게 느껴질까? 마음이 힘든 분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을까? 올망졸망 사랑스러운 원고들이 모이고, 다듬고 다듬는 과정을 거쳐서 마침내 한 권의 파일로 잘 담겼을 때, 나는 이 책을 선물하고 싶은 친구들을 한 명씩 떠올렸다.


요즘 따라 어른으로 산다는 무게가 뭔지 알 거 같다던, 퇴사하고 개발 공부를 시작한 대학 동창. 대기업 생산직에서 일하는, 퇴근 후 취미는 다이어리 꾸미기인 중학교 친구. 판교로 왕복 4시간 출퇴근길에 아무리 피곤해도 눈을 부릅뜨고 부동산 책을 본다던 언니……


그러다 문득, 고양이를 정말 많이 셌던 시절이 떠올랐다. 스물두 살 11월, 세 번째 수능 시험을 치른 직후였다. 마냥 초조하게 입시 결과를 기다리자니 견딜 수 없을 거 같아서, 몸과 마음을 힘껏 써야 하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홍대에 있는 고양이 카페였다. 그곳에는 무려 오십 마리 넘는 고양이가 살고 있었다.


아르바이트 첫날, 사장님은 내게 고양이 이름을 전부 외우라는 몹시 어려운 (사실상 불가능해 보였던) 숙제를 주셨다. 이름을 외우는 건 고사하고 러시안블루, 페르시안, 샴 등등…… 같은 종의 고양이는 쟤가 얘 같고, 얘가 쟤 같아서 구별도 되지 않았다. 고양이들은 애타는 초짜 알바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눈곱을 떼거나 빗질을 해 주러 다가가면 싫다고 몸부림을 치면서도 은근히 내 주변을 맴돌았다. 날이 추워서 손님이 많지 않았다. 며칠 만에 일이 능숙해져서 나는 혼자 카페를 관리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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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사진... 귀여운 고양이들


그해 겨울은 오십 마리의 고양이들을 세면서 보냈다. 매일 아침 출근해서 문을 열었을 때의 풍경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정물처럼 제 자리에 조용히 앉아서 나를 응시하던 수십 마리의 고양이들. 나는 한 마리 한 마리를 바라보며 이름을 불러 주었다. 루시, 앨리스, 당산이, 순돌이, 미니…… 그러다 보면 대여섯 마리가 몸을 쭈욱 일으키고 사뿐사뿐 다가와서 반갑다는 듯 내 다리에 몸을 비볐다. 밥을 주고, 물을 갈아주고, 손톱 한번 깎으려고 사투를 벌이다 팔을 온통 긁히는 동안 나는 고양이들을 너무 사랑하게 되었다.


나는 2주 만에 모든 고양이들의 이름을 외웠고, 카페에 딸린 작은 방에서 새로 태어나는 고양이들의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토록 가고 싶던 대학의 결과 발표날, ‘합격’ 두 글자에 기뻐서 눈물이 핑 고였던 내 무릎 위에는 고양이 두 마리가 포근하게 앉아 있었다.


마음이 힘들 때 고양이를 세었던 시절을 떠올려 보면 고양이들에게 참 고맙다. 오십 마리의 고양이들은 나 자신이 먼지 한 톨 같다고 느껴지던 시절을 든든하게 지켜주었다. 이렇듯, 우리가 마음을 다해 사랑했던 것들은 우리에게 힘을 준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어떤 것을 사랑하는 것만으로도 그럭저럭 괜찮을 수 있었던 시절을 떠올리며 모두가 조금씩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문장이 품고 있는 의미가 전달되길 바라며 보도자료의 출판사 리뷰를 작성했다.












날마다 기억할 것. 우리는 이렇게 귀엽고 작은 세상으로부터 무럭무럭 발돋움했다. 고개를 숙여 보면, 우리가 단단하게 발 디디고 있는 곳은 언제나 그곳이었다. 귀여움은 우리를 다채로운 존재로 살게 한다. 종종 당신은 무채색 세상살이에 휩쓸려 자신만의 빛을 잃었다고 생각할 때도 있었겠지만, 당신은 그것을 한순간도 잃은 적 없다.

그러므로, 마음이 힘들 때는 잠시 쉬어 가자. 마음 곳곳에 흩어진 생각은 잠시 밀어 두고, 고개를 숙여서 들여다보자. 귀엽고 다정한 세계를. 당신의 세계에는 무엇이 있는가? 여기저기서 꼬리를 흔들거나 기지개를 켜거나 햇살에 몸을 뒹구는 귀여운 고양이를 발견했다면 한 번 천천히 세어 볼까? 하나, 둘, 셋, 넷... 귀여운 고양이를 세는 마음으로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알게 될 것이다. 당신의 일상적인 하루하루에도 귀엽고 소중한 기적은 언제나 존재했다는 것을.

- 출판사 리뷰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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