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조작단의 일원이 된 날

돈으로 사랑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죠?

by 부크럼


바텐더로 일하던 시절, 손님에게 명함을 받은 적이 있었다. 직업은 영화 프로듀서라던 40대 중반 정도 되어 보이는 여성분이었다. 당시 나는 굉장히 사교적인 성격이어서 누구를 만나도 쉽게 벽을 허물었고 곧잘 친해졌다. 맥주를 한 병씩 마시며 시시껄렁한 가십거리를 나누던 중, 그 사람은 대뜸 어머, 하더니 대화의 흐름을 끊고 내 눈을 지긋이 들여다보았다.

“그러고 보니 호감형이네. 나 여직원 구하는데 같이 한번 해 볼래요?”


그건 영화 일은 아니었다. 두어 달 뒤, 하던 일을 그만두고 백수가 되자 문득 그 명함이 생각났다. 여태껏 제안받았던 일 중에 가장 특이했기 때문에 갑자기 주체 못 할 호기심이 생겼다. 다음 날 그 사람과 나는 보광동의 어느 작은 카페에서 만났다.

“연락 잘했어요. 소질이 있어 보였어. 이 일에서 가장 중요한 게 붙임성이거든.”

무려 인터넷에 공식 홈페이지까지 있는 연애조작단이었다. 여자는 직업 자부심이 대단해 보였다. 나와 대화 중에도 계속해서 걸려 오는 의뢰인의 전화를 받으러 나갔다가 들어오길 반복했다. 그녀가 자리를 비운 동안 나는 홈페이지에 사람들이 남긴 이용 후기 글을 읽어 보았다.

‘실장님 덕분에 다음 주에 결혼합니다ㅠㅠ’

‘3개월 작전 끝나고 저희 다시 돈독해졌어요!’

‘여기가 진짜 재회 맛집입니다.’

직업명 자체는 유명한 영화 때문에 익숙했지만, 유니콘이나 호그와트나 골룸처럼 그냥 이야기 안에서만 존재하는 개념이라고 생각했었다. 누가 조작까지 해서 연애를 하고 싶어 할까. 연애 같은 건 본인이 알아서 하거나, 알아서 되지 않았을 땐 혼자 지내면 되잖아. 사랑이 그렇게 절실해? 내 딱딱한 감수성으로는 이해가 전혀 가지 않아서 더 흥미로웠다.

“근데 저는 뭘 하면 돼요?”

“그건 내일 차에서 다 설명해 줄 거야. 한 달째 풀리지 않는 건이 있으니까 거기로 출근부터 해 줘요.”


당일 날 아침, 나는 최대한 눈에 띄지 않는 무채색 옷차림으로 약속 장소에 나갔다. 혹시 몰라서 선글라스와 모자도 준비했다. 무전기 같은 걸 차려나? 미지의 일이 시작되었음에 두근거리며, 나를 데리러 왔다던 직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아뿔싸. 전화를 받은 남자와 그 옆에 서 있는 남자는 금요일 밤 이태원 한복판에서도 가장 눈에 띌 것 같은 차림을 하고 있었다. 한 명은 가로등처럼 키가 컸고 민머리에 민소매를 입고 있었는데, 드러난 한쪽 팔은 살갗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온통 문신을 한 반면 나머지 한쪽 팔은 아무 그림도 없이 깨끗했다. 동그란 안경을 낀 다른 한 명은 파란색으로 염색한 레게머리를 뒤로 묶었으며 꽃무늬 아디다스 저지를 입고 있었다. 조금... 예상 밖이었다. 나는 해맑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 보이는 그들과 함께 승용차를 타고 시흥으로 향했다.


이곳에 모든 걸 털어놓으면 영업 기밀 누설이 될까 봐 일이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는지에 관한 디테일은 비밀로 해 두겠다. 그날 나는 의뢰인의 전여자친구가 사는 빌라 근처 아이스크림 집에 다섯 시간을 앉아 있었다. 남자 직원들은 번갈아 가며 한 명씩 그 빌라 앞에서 보초를 섰다. 도대체 그렇게 눈에 띄는 사람들이 어떻게 그 일을 하고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르바이트생이 우리를 슬쩍슬쩍 훔쳐보는 게 느껴졌다.

“오늘도 허탕 칠 거 같은데요. 진짜 집순이 맞네.”

“가뜩이나 코로나 때문에. 화재경보기라도 울려야 하나.”

둘의 대화를 들으며 나는 초대된 회사 단톡방에 들어가 보았다. 우리 말고도 전국으로 흩어진 3인 1조 팀이 여러 개 있었다. 단톡방에는 의뢰인들이 애타게 사랑하는 사람들의 사진이 계속해서 올라오고 있었다. 건널목을 건너는 누군가를 찍어 올리며 ‘이 사람이 맞는 거 같냐.’ ‘좀 더 가까이 찍어 봐라.’ ‘일단 따라가는 중이다.’ 등의 메시지가 공유되고 있었다.


나는 우리 팀이 기다리는 그녀가 제발 집 밖으로 나오지 않길 바랐다. 이 작전에 가담해도 괜찮을지 좀 더 고민해 볼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한쪽의 백조 같은 노력으로 이미 끝난 사랑에 접착제를 붙여 가는 과정이 실제로는 어떨지 궁금했고, 그게 아름답게 완성되는 장면에서 연인은 어떤 표정을 지을지 정말 궁금했고, 직접 목격하고는 싶었으나…… 동시에 이 모든 건 부도덕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외출한 그녀를 발견한 남자 직원이 내게 전화를 걸면, 나는 나가서 그녀를 우연한 척 붙잡아야 했다. 아픈 척을 하며 도움을 요청하든, 핸드폰을 잃어버린 척하든, 길을 물어보는 척하든, 어떻게든 그녀를 붙잡아서 경계심을 누그러뜨리도록 잔뜩 너스레를 떨어서 전화번호까지 교환해야 했다. 그래야 연애 조작이 시작될 수 있었다.

그 후부터 내 역할은 큐피드가 된다. 의뢰인과 그녀 사이를 로맨틱하게 연결해 줄. 아무런 설명도 듣지 못한 채 첫 출근부터 한 것 치고 내가 맡은 임무는 엄청나게 막중했다. 나는 머릿속으로 계속해서 ‘할까 말까 할까 말까’ 갈등했다. 교대로 서 있다가 아이스크림 집에 들어오며 바통터치를 하던 직원들은 더운 날에 점점 지치는지 혼잣말처럼 욕을 내뱉고 웃었다. "시발, 진짜 나오기만 해 봐."


천만다행으로 그녀는 그날도 외출하지 않았다. 그날 저녁, 나는 내게 명함을 줬던 여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제 적성은 아닌 거 같아요. (이거 합법적인 일이긴 해요?)”

“아직 한 건도 안 해봤잖아요. 딱 한 건만 해 보지.”

“정말 죄송해요. 더 좋은 분 오실 거예요. (그러다 잡혀가요 진짜.)”


나는 빠르게 다른 직장을 구했다. 이번엔 학원 강사가 되었다. 동료들과 점심을 먹다가 문득, 그런 시스템이 있다고 분개하며 연애조작단 얘기를 들려주는데 서너 명이 뭔가를 안다는 듯 낄낄 웃었다. 중심에 있던 사람이 입을 열었다.

“사실은 제가 작년에 그런 거 해 봤거든요.”

나는 깜짝 놀랐다. 원하면 언제든지 연애를 시작할 수 있을 거 같은, 꽤 멋진 여자분이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 사람은 아직 대학생이었다.

“전 남자친구랑 진짜 딱 한 번만 다시 잘해 보고 싶어서요. 헤어지고 정말 후회했거든요.”

“그래서 잘 됐어요?”

“되게 자연스럽게 재회해서 육 개월은 더 만났어요. 비슷한 문제로 다시 헤어졌지만.”

“뭐야. 몇백만 원 주고 말짱 도루묵이네. 후회 안 해요?”

“후회는 안 하는데, 그거 할부금 갚으려고 휴학하고 여기서 일하는 거예요.”

모두가 함께 웃었다. 누군가 말했다.

“그냥 그 돈으로 명품백 하나 사주면서 다시 만나자고 하면 되잖아요.”

다들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이번엔 그 사람은 웃지 않았다. 밥을 먹고 식당을 나오는데, 그 사람은 내 옆에 붙어 서서 조금 아련한 표정으로 걷다가 대뜸 말했다.

“근데요. 저는 그 돈 안 아까워요 진짜.”

“왜요?”

“결과적으로 보면 그때 헤어지나 다시 만나고 헤어지나 똑같지만. 전남친이랑 저 사이에 어떤 반짝이는 순간 하나가 만들어진 거잖아요. 전남친은 그게 진짜였다고 믿고 계속 살아가겠죠. 설령 다 짜인 각본이라고 해도 한때 정말 사랑했던 사람에게 제가 운명이었다고 기억된다는 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나쁘지 않은 수확이에요.”

그 사람의 말이 정확히 이해된 건 아니지만, 어떤 마음으로 사람들이 그 서비스를 이용하고 싶어 하는지 짐작해볼 수는 있을 거 같았다. 그즈음, 내게는 내가 굳건하게 지켜 온 ‘사랑과 연애’의 정의를 전부 말랑하게 녹여 놓은 신기한 애인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 사람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사람들은 돈으로 사랑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죠? 절대 아니에요. 마음 한번 틀어지면 다 끝이에요. 돈으로 사랑 자체를 살 수는 없지만, 사랑을 다시 할 수 있게끔 도와주는 작전을 살 수는 있는 거죠.”

“근데... 좀 찜찜한 일인 건 알죠?”

내 말에 그 사람은 그제야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덧 여름이 지나고 완연한 가을이었다. 직선으로 난 가로수길은 울긋불긋 물들어 있었다. 언젠가 가지에서 푸르르게 돋아났을 나뭇잎은 이제 곧 힘을 잃고 전부 낙엽이 될 거다. 나보다 좀 더 앞서서 걷는 그 사람의 머리 위로 단풍잎이 하나둘 조용히 유영하듯 떨어졌고 그 사람은 그걸 피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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