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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점 리스본 Oct 19. 2021

우정편지] 물속깊이에게 마롱

- 10월 13일 수요일 : 어제는 두툼한 이불을 꺼냈습니다. 


물속깊이님 편지 읽을 때는 이번에는 답장을 천천히 써야지 했는데, 김연수 작가님 이야기가 하고 싶어 서둘렀어요(수다쟁이인가 봅니다). 소설이 좋아도 소설가를 특별히 좋아하지 않았어요. 그러나 지금 생각하니 소설가를 알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네요. 그래서 물속깊이님의 김연수 작가님 사랑은 놀랍고 부럽고 또한 궁금했어요. 알려주신 작가님 북 콘서트를 부지런히 들은 것은 그러니까, 호기심 때문이었어요(하하하).그제는 ‘서울국제작가축제 – 작가 ; 마주 보다 / 회복하는 글쓰기’를 보고, 저도 작가님을 사모하기로 딱 정했습니다. 고맙다는 인사부터 드릴까, 마음을 정한 계기를 알려드릴까 하다가 인사는 이심전심을 핑계로 생략하기로 했어요. 


이유를 말씀드리려 톺아보니 작가님이 다른 사람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했던 숲속책방 북 콘서트가 시작이었지 싶습니다. 아니 듣는 소설 <일곱 해의 마지막> 인지도 모르지만, 어제는 쐐기를 박은 날입니다. 작가님이 어머님 말씀으로 시작한 이야기에서 “느닷없이 무슨 일인가 벌어지고 그다음 순간 전혀 예기치 않은 현실로 떨어질 때 자아는 자신의 이야기가 부정당한다고 느끼고 슬픔과 상실감에 빠집니다.”를 들을 때, ‘느닷없이’ 오늘부터 1일이네 했어요. 작가님 말씀을 들으면 좋은 사람이구나, 어른이구나 하는 생각과 저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바람이 생깁니다. 내일은 작가님이 좋아한다는 <설국>을 읽으려고요. 


김연수 작가님 이야기는 차차 또 하고, 이번에는 사과꽃 이야기입니다. 어제, 시장에 갔더니 달고 맛있는 감홍사과라고 적힌 곳에 싱싱한 사과가 있었어요. 꽃이 필 무렵 냉해를 입어서 사과를 맺지 못했다는 물속깊이님 편지가 생각났어요. 생산지가 다른가 하다가 감홍사과 맛이 궁금했지만, 내년을 기약했어요. 사과를 맺지 못한 나무는 ‘느닷없이’ 피해만 본 것인지, 안 좋은 날씨에 포기를 선택한 건지 궁금했습니다.  


저는 건강검진 결과에서 ‘느닷없이’ 몸 상태가 신호등에서 빨강으로 바뀌기 전 노랑이라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깜빡깜빡, 잠시 후면 빨강으로 변한다니 혼란스러웠습니다. 노화 외에 코로나19로 20개월이나 쉬었던 수영도 한몫했겠지요. 글쓰기만 힘이 센 것이 아니었네요. 코로나19로 활동량이 줄어든 아이들 중에 비만이 되는 경우가 많다는 기사가 그제야 생각났습니다. 하지만, 더 늦지 않게 발견해서 다행이구나, 했어요. 다이어트하고 약 먹으면 좋아질 수 있다니까요. 마침, ‘회복하는 글쓰기 2’에서 김연수 작가님이 ‘좋은 게 있으면 나쁜 게 있다, 어느 쪽을 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라고 하십니다. 물속깊이님 어머님은 어떠신지 안부 여쭙니다. 


물속깊이님이 동네 산책길에 들렀다는 통창 있는 빨간 벽돌집 카페에는 저도 가보고 싶어요. 산책길에 들릴 수 있는 카페는 무조건 백 점이니까요. 벽돌집이라니, 연남동 레이어드 카페가 그립습니다. 레이어드도 벽돌집인데, 가격은 사악하고 맛은 황홀한 망고 케이크가 있거든요. 다음 달 생일날에는 다이어트는 잠시 잊고 무조건 달려가야겠어요. 물속깊이님은 2차 백신을 언제 맞는지요. 1차 때 고생을 많이 하셨으니, 걱정이 크겠습니다. 잘 지나갈 거라고 괜찮을 거라고 말씀드리는 일이 쉽지 않네요. 간절한 마음과 달리 열심히 하면 잘할 수 있다는 말보다 막연해서요. 백신 맞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고, 운이라기에는 또 어이없고요. 그럼에도 좋은 쪽으로 생각하자고 말씀드려요. 저는, 근육통으로 삼사일 고생했는데 제 책임도 있었습니다. 주사 맞은 다음날에 운동하지 말라는 말을 무시하고 달님에게 한 약속을 지키려고 걸었거든요. 다리를 시작으로 온몸이 두들겨 맞은 듯 아팠는데 지리산이나 한라산 다녀왔을 때랑 달랐어요. 생전 처음 만나는 통증에 코로나 백신 맞은 것을 실감했습니다. 달님에게 3일 병가를 내고 포카리스웨트를 먹었더니, 지금은 피로감만 있을 뿐 괜찮습니다.


어제는 두툼한 이불을 꺼냈습니다. 일요일에는 서울 기온이 2°까지 떨어진다니 보일러도 곧, 켜야겠네요. 사무실 들어가기 전 10분 산책은 어떠신가요. 10분이라는 구체적인 시간에, 충만했던 10분이 생각났습니다. 학교 다닐 때 쉬는 시간이요. 도시락을 먹기도 했고, 낮잠도 잤고, 3층 교실에서 1층 휴게실에 군것질거리를 사기 위해 달음박질을 했고, 차례를 기다려 겨우 돌아온 캔디 만화책도 봤거든요. 액션 영화를 생각하면 10분이라는 시간은 지구를 구하고도 남는 시간, 물속깊이님 10분은 ‘느닷없이’ 가을다운 가을을 만나는데 충분한 시간이 되기를요.


매일 글쓰기 숙제로 읽는 <유혹하는 글쓰기> 인생론에는 기억하고 싶은 문장이 있습니다. “글쓰기 목적은 살아남고 이겨내고 일어서는 것이다. 행복해지는 것이다.” 우리 편지도 행복한 일에 속했으면 좋겠습니다. 2021년 10월 13일. 마롱드림 ◑



덧 :-) 언젠가 만난다면 공기놀이를 제안합니다. 음, 홀짝 구슬 놀이는 어떨까요. 


























레몬케이크 망고케이크 시선 변화 김연수 작가님 고무장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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