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믿음이 흔들릴때,
'함안댁'이라는 마을 아낙이 있습니다.
그녀는 사악한 남편의 죄로 그 오욕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슴을 끊게 됩니다.
평민의 삶을 살았지만, 고된 노동을 견디며 개차반같은 남편을 하늘같이 섬기고 자식의 글공부를 직접 가르치기도 하는, 이웃들에게도 '경우와 처신'을 아는 그런 여인이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집 마당에 있던 살구나무에 목을 매어 자결합니다.
비록 죽은 살구나무였지만, 한 여인의 죽음을 감당하기에는 충분했나 봅니다.
그러나 함안댁의 죽음을 알고 달려온 마을 주민들의 행동은 경악을 금치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토지가 품은 문장
<토지> 2권, p.421, 마로니에북스
옮겨지는 시체를 따라 사람들이 방 앞으로 몰릴때 봉기는 짚세기를 벗어던지고 원숭이 같이 나무를 타고 올라가서 목맨 새끼줄을 걷어 차근차근 감아 손목에 끼고 난 다음 나뭇가지를 휘어잡으며 툭툭 분지른다.
그 소리에 돌아본 몇몇 아낙들이 머쓱해하는 표정을 지었으나 잠시였다.
어느새 나무 밑으로 몰려들었다. 마을의 젊은 치들도 덤비듯이 쫓아왔다. 모두 엉겨붙어 나뭇가지를 꺽어 간수하기에 바쁘다.
순식간에 나무는 한 개의 기둥이 되고 말았다.
(....)
"이기이 만병에 다 좋다 카지마는 그 중에서도 하늘병(간질)에는 떨어지게 듣는다 카더마."
몽톡하게 된 나무를 올려다보며 봉기는 의기양양해서 말했다.
"죽은 나무라서 우떨란고? 효험이 있이까?"
아낙 한 사람이 미심쩍게 말했다. 봉기는 씩 웃는다.
죽은 사람의 정기를 받아 약물이 된다는 믿음에서 모두들 덤벼들어 꺽은 것인데, 죽은 나무여서 과연 정기가 통하겠느냐는 아낙의 의심이다.
병에 효험이 있기로는 목을 매단 끈이나 새끼줄이 제일이라는 것이 예부터 전해져 내려온 말이었다. 남 먼저 그것을 차지했으니 봉기로서는 대만족이 아닐 수 없다.
저는 처음 이 장면을 읽었을 때 정확하게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내가 상상하는 장면이 정말 맞나?..."
"병에 효험이 있기로는 목을 매단 끈이나 새끼줄이 제일"이라는 문장을 또박또박 이해하고 나서야 이 장면을 재독해 보았습니다.
'봉기'라는 인물은 마을 주민들 중 가장 빨리 함안댁이 목을 메어 죽은 나무 위로 '원숭이처럼' 올라가서 목맨 새끼줄을 걷어 손목에 끼고, 그 나뭇가지를 툭툭 잘라 챙겼다는 것입니다. '특히 이것은 간질에 특효약'이라는 생각까지 하며 말이지요.
마을 사람들은 이런 봉기를 나무라기는 커녕, 이내 너도나도 달려와 "서로 엉겨붙어 나뭇가지를 꺽는" 기가 막힌 장면이 이어집니다. 순식간에 살구나무는 모든 가지들이 다 뜯겨 나간 채 "한 개의 기둥이 되고 말았다"했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 것인가요...?
망자의 시신이 나무에서 옮겨지는 와중임에도 마을 사람들은 그녀가 목을 맬 때 사용했던 새끼끈과 주변의 나뭇가지를 탐욕스럽게 꺽어 챙겼고, 이런 행위에 주저하기는 커녕 "하필이면 죽은 나무에 목을 메달아서... 이게 병에 효험이 있을까?"라는 의심을 할 뿐입니다.
특히 누구보다도 재빠르게 새끼끈까지 챙긴 봉기는 "대만족"을 느낍니다.
자기 몫의 나뭇가지를 다 차지한 후에야 비로소 마을 아낙들은 눈 앞의 비극적인 현실을 바라봅니다.
"조석으로 대하던 이웃의 죽음을 보면서 불로초도 아니겠고, 하늘에서 뿌려지는 엽전도 아닌데 욕심을 내어 뒤질세라 서둘렀던 아낙들은 차츰 제풀에 민망해져서 떠들기 시작했다. 함안댁이 불쌍하다는 것이요 정히 여자로서는 본볼 만한 사람이었다는 칭찬이다. 칭찬이라도 하면 노염을 탄 영신이 무정한 자신들을 용서해 주리라, 그런 생각이라도 하는 것처럼(p.422)"
그러나 이 마저도 얼마나 "참을 수 없이 가벼운" 감정인지 박경리 작가는 곧 다음 문장을 통해 희극적으로 표현해 냅니다.
"막딸네도 방망이를 휘두르는 사령같이 손에 든 나뭇가지를 휘두르며 어성을 높이고 있었다..."
망자가 목을 매었던 나뭇가지를 방망이처럼 휘두르며 언성을 높이면서 과연 명목을 빌수 있는 것일까요?
그러나 소설이나 영화에서 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이런 인간의 극한적인 악함을 보고 들을 때마다 제 믿음이 흔들리기도 합니다. 각종 범죄, 폭력, 사기, 배반, 증오와 따돌림 등등 매일 매일 업데이트되는 뉴스들의 제목만 보아도 마음이 떨립니다.
이렇게 인간의 선함에 대한 믿음이 흔들릴 때 <부활>의 문장을 떠올려 보기도 합니다.
가장 널리 펴진 흔한 미신들 가운데 하나는 사람이 저마다 자기만의 일정한 기질을 지녀서 착한사람,나쁜사람,똑똑한 사람, 어리석은 사람, 열정적인 사람, 무심한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그런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에 대해 악하기보다 선할때가 더 많고, 어리석기보다 총명할 때가 더 많고, 무심하기보다 열정적일때가 더 많다고 말할수 있으며 또 그 반대도 가능하다. 하지만 우리가 한 사람에 대해 착하다거나 총명하다고 또 사람에 대해 악하다거나 어리석다고 말한다면 사실이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언제다 사람들을 그런식으로 분류한다. 그리고 그것은 옳지 않다.
인간은 강과 같다. 어디에 있든 물은 똑같고 변함없다. 그러나 어느 강이나 좁고 빨라졌다가 다시 넓어지기도 한다. 잔잔해지고, 깨끗해지고, 차가워지고, 탁해지고, 따뜻해진다. 인간도 그렇다. 어떤 사람은 인간이 가질수 있는 모든 성질의 싹을 자기안에 품고 있다가 때로는 이런 성질을, 때로는 저런 성질을 발현하며, 여전히 같은 사람이면서 종종 본래 모습과 완전히 달라지기도 한다. 몇몇 사람들에게서는 이런 변화가 특히 심하게 나타난다.
<부활>, 톨스토이
"인간은 강과 같다.., 누구든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모든 성질을 싹을 자기안에 품고 있다가 때론, 이런 성질, 저런 성질이 발현하기도 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에 대해 악하기보다 선할 때가 더 많고, 어리석기보다 총명할 때가 더 많고 무심하기보다 열정적일 때가 더 많다고 말할 수 있으며 또 그 반대도 가능하다...."
가까스로 인간의 선함쪽으로 마음을 돌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