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의 스토리는 나라 안팎의 위태로운 시대를 거치면서 신분제 또한무너져가던 혼란스런 시간을 지나갑니다.
양반인 서희를 마음에 품게 된 길상은 서희 집안인 최참판댁의 종으로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어린 시절 절에서 살다 최참판댁까지 오게된 길상이란 인물이 과연 처음부터 종의 자식이었는지, 밝혀지지않은 출생의 비밀이 있는지 그의 뿌리에 대한정황은 드러나지 않습니다. 다만 양반댁 대부분의 종들과는 달리 세상을 보는 고귀한 시선과 섬세한 안목을 가진 인물로 서희 곁을 지켜나갑니다.
그런 길상이지만, 막상 혼인할 나이가 되고 서희를 사랑하게된자신의 마음을 깨닫게 되면서 갈등이 시작됩니다. 시대 상황상 분명 흔들리고 있는 신분 제도이기는 하나, 수백년을 이어온 이 제도적 벽은 영혼만큼은자유로왔던 길상이라 할지라도 쉽게 넘어설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같이 스산한 가을 날이었나 봅니다.
길상은 마음을 건넬 수 없는 사랑 앞에, 잃어버린 조국 앞에, 어찌할 수 없는 자신의 운명 앞에 아프고 아픈 마음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토지가 품은 문장
<토지> 6권, 마로니에북스, p.16
스산한 가을 바람이 부는 들판의 작은 꽃에는 무슨 벌레가 찾아드는 겔까.
심장을 쪼갤 수만 있다면 그 가냘픈 작은 벌레에게도 주고 공작새 같고 연꽃 같은 서희애기씨에게도 주고, 이 만주땅 벌판에 누더기 같이 찾아온 내 겨레에게도 주고, 그리고 마지막에는 운명신에게 피 흐르는 내 심장의 일부를 주고 싶다....
심장을 쪼갤 수만 있다면.
간절함을 표현하는 이 아름다운 문장에 저는 단박에 마음을 빼앗깁니다.
심장 소리는 살아있음의 증거입니다.
태아는 가장 먼저 심장 소리를 내며, 자신이 생명을 얻었음을 부모에게 알립니다.
그런 심장을 쪼개어 나눌만큼 간절함이 있는 대상이 나에게 무엇이 있는지 생각해 봅니다.
길상이 서 있던 스산한 가을 바람 부는 들판처럼
서늘한 가을 가운이 훅하고 들어오는 저녁이었기 때문일까요?
길상의 "피 흐르는 내 심장의 일부"가 유난히도 뜨겁게 느껴집니다.
내 속의 뜨거움은 무엇인가?라고 물었지만, 쉽게 대답을 못 합니다.
자꾸만 느껴지는 서늘함은 갑자기 다가온 가을때문이라 탓해 보지만, 한껏 낮아진 마음의 온도마저 이 때문이라 말할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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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피 흘릴만큼 고통스럽다해도 뜨거운 심장을 가지고 싶다'라는 고백이 정직할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