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토지>의 인물중 '봉순이'라는, 주인공 서희를 가장 가까이서 보필하는 여종이 있습니다.
그녀는 타고난 소리꾼의 기질이 있어 당시 광대나 굿판 등에서 노랫가락을 뽑는 사람들을 동경하고 자신 또한 그런 삶을 살고 싶어하는 인물입니다.
하지만 봉순이의 엄마는 온갖 험한 말로 딸의 그런 삶을 결사적으로 반대합니다.
그러나 봉순이가 어쩌다 노랫가락이라도 뽑을 때면 듣는 사람들 모두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녀의 끼와 재능을 빛을 발했습니다.
토지가 품은 문장
<토지> 4권, 마로니에북스, p.223
"니도 그래가지고 인물값 할 기다. 저리 생겼으니 우찌 여염집 지어마가 되겄노.
계집이 인물 잘나믄 노방초 되기가 십상이고, 니 애미가 생시에 그리 노래를 부르거를 싫다고 직일 듯이 서둘더마는, 옛말에도 부모 말이 문서더라고 자식 질엎을 알기로사 낳아서 기른 어미만 하까.
나이답지 않게 걸출한 노랫가락을 뽑는 봉순이에게 마을 사람들은 "저리 생겼으니 우찌 여염집 지어마가 되겄노"라면서 그녀의 재주를 안타까와합니다.
봉순의 엄마 또한 딸이 가진 재주를 몰랐을 리가 없죠.
봉순엄마는 그 직업이 막연히 싫어서가 아니라, 딸의 재주를 너무 잘 알고 있기에, 당시 여자로서 그런 험하고 고된 삶을 살기를 한사코 말렸던것 같습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요?
아이가 커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저는 이 말에 의심을 품게 되었습니다.
"내 품"에 있을 때는 당연히 나 만큼 내 자식을 잘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너무 당연합니다.
그런데, 자식이 이렇게 온전히 "부모의 품 안"에 있는 기간이 얼마나 될까요?
인생 80년이라해도 고작해야 10년 내외일 것입니다.
초등 고학년만 되어도 내 아이는 내 품 안의 자식만은 아닙니다.
아빠, 엄마가 모르는 학교생활, 친구관계, 나름 심각한 혼자만의 고민과 슬픔 등의 세계가 시작되니까요.
중고등학교 시기를 지나, 성인이 되면 부모와 자식의 세계는 그 틈이 더욱 벌어질 것입니다.
아무리 부모라지만, 내가 모르는 세상에서 내 자식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는지 알 길은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부모가 자식을 가장 잘 안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요?
어쩌면 부모는 자식을 가장 잘 모르는 존재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초등 고학년만 되어도 '우리 아이는 너무 순해요' '욕은 한 마디도 못해요 ' 혹은 '우리 아이는 게임은 아예 관심도 없더라구요' ' 여자 친구는 없어요' 등등의 말은 삼가해야 한다는 얘기를 할 정도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그닥 슬프고 억울한 일만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자식은 내 소유물이 아니므로, 자식의 모든 것을 부모가 알아야 하는 것도, 알 수도 없는 것이니까요. 그대신 우리 아이가 독립적인 인격으로 성장하는 가능성을 볼 수 있는 것이니까요.
대신 내 아이의 행복한 성장을 돕는 '조언자'이자 '돌봄자'로서의 역할을 진심으로 해 나가는 것이 옳다는 생각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