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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 Nov 18. 2024

<토지> 이것은 내 땅이다.

하늘만큼 확실한 믿음,


나라 잃은 현실 앞에 농사를 천명으로 하루하루 살아가던 백성들은 양반이나 왕족보다 더욱 속설없이 무너져 갑니다.  


삶의 근원이었던, 땅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생명같은 터전을 잃은 백성들의 통분이 얼마나 뼈저린 것이었는지... 그 절망의 깊이를 감히 상상치 못했던,  21세기를 살고 있는 저는 곳곳에 드러난 절규를 마주하며 마냥 숙연해 졌습니다.


거대한 파도앞에 나릇배마냥 위태로운 의병이고 독립군이었지만,  백성들은 그들에게 품었던 희망마저 버려야하는 두려움에 직면합니다.


토지가 품은 문장


<토지> 6권, 마로니에북스, p.217


그렇다. 실날같은 희망이랄까. 의병에게 걸어보는 실날 같은 희망이 서글펐던 것이다.
못 박힌 손바닥과 굽어진 등과 날로 늘어가는 흰 머리털과 지친 산천, 실낱 같은 희망을 믿을 수 없다.

이 삼사 년 동안 겪어야 했던 웃으려야 웃을 수 없고, 울려야 울 수도 없었던 일들, 적든 많든 당할 수 밖에 없었던 억울함이, 뚜렷하게 막연하게 들려오는 궁핍의 발소리가, 이들을 견딜 수 없게 한다.

관원들의 토색질이 심하고 양반들 하시가 피눈물나는 것이었다고 하지만,
땅보고 하늘보고 시절 놓을 것을 축수하며 들판을 초조하게 바라보아온 세월이었다고 하지만, 

이것은 내 땅이다! 내 조상이 물려준 내 땅이다!   

하늘에 대한 믿음 만큼 확실한 믿음이 언제 어떻게 하여 앞 뒤 돌아볼 새도 없이 무너져버렸는가.

토지조사란 무슨 놈의 낮 도깨비냐, 괴상한 측량기구를 둘러메고 산산골골에 스며들어온 주사라 하고 통역이라 하고 기수니 측량원이니, 그 양복쟁이들이 칼차고 총 멘 순사 헌병보다 더 무서울 줄이야.

아이고 오, 하느님 맙소사!
땅을 치고 통곡할들 감나무를 쳐다보고 짖어대는 것은 강아지 뿐이다.

   

실날 같은 희망마저 놓아야 하는 심정은 절규할 힘도 사라진 무기력이요, 서글픔인가 봅니다.


나라의 덕을 본 것도 없고, 양반들, 지주들의 수탈에 지친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세월이었지만, 그래도 그들을 버티게 했던 힘이 바로 이었군요.


"이것은 내 땅이다! 내 조상이 물려준 내 땅이다!"

이 믿음이었군요.


'토지조사'... 낮 도깨비같이 그들의 땅을 빼앗아 가는 이것은 대체 뭐란 말인가?  측량 나온 양복쟁이들,  백성들은 그들을 총 매고, 칼 차고 들이닥치는 순사, 헌병보다 더 무섭다 말합니다.


비단 농사짓던 땅만을 의미했을 까요?

그들이 잃을까 두려워했던 것은 몇 마지기 내 몫의 땅뿐만 아니라, 아마도 '내 나라' 그 거대한 터전이었겠지 싶습니다.




오늘도 우리가 두 발 딛고 있는 이 땅은 그들의 절규가 맺혔던 바로 그 땅이라는 사실을 새삼 생각해 봅니다.


지금껏 솔직히 저는 내 나라, 이 땅의 소중함을 절박하게 느끼지 못하며 살아 왔던것 같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세대처럼 이 땅에서 벌어진 전쟁- 지금의 이라크, 이스라엘 국민들이 겪는 것보다 어쩌면 더 비극적이었을 6.25 전쟁도 겪어 보지도 못했고,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처럼 나라를 빼앗긴 설움을 몸소 겪어본 적은 더우기 없으니까요.




내 나라, 이 땅은 태어날 때부터 너무나 "당연히" 누리는 것이었으니까요.

어느날 갑자기 내 삶에서 '나라'가 사라진다면, 그래서 Korea라고 쓸 수 있는 국적이 없는 사람이 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하루 아침에 "난민"이 되는 걸까요?  

난민의 처지를 생각한다해도 '대한민국'이 내 삶에서 얼마나 큰 울타리인가를 실감하기는 쉽지가 않습니다.



관원들의 토색질이 심하고 양반들 하시가 피눈물나는 것이었고, 

땅보고 하늘보고 시절 놓을 것을 축수하며 들판을 초조하게 바라보아온 세월을 살아왔던 백성들 처럼, 

  

저 또한 실감은 커녕,  정치, 경제, 교육 등등 어느 한 곳 번듯한 구석이 보이질 않은 이 나라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곤 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이렇게 힘이 없을까? 왜 이렇게 목소리를 내지 못할까?  언제까지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견주기만 할까?.... 떄로는 남들이 말하는 '국적이 약점이다'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던 적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토지 속 백성들의 절절한 목소리를 마주한 덕분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나라 '대한민국'은 든든한 '믿음'이라는 사실을 새삼 실감하게 됩니다.


그동안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살 만큼 "내 조상이 물려준 땅, 대한민국은 건재하다'라는 것은 무의식속에 자리잡은 확고한 믿음인가 봅니다. 

 

뜨거운 애국심을 가지고 살아오진 못했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잊지 않게 해 준 토지의 한 문장에 오늘은 특별한 감사의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대한민국'이 있어,

내 일상을 영위할 수 있는 지구상의 큰 대지, 울타리가 있어,

진심으로 고마운 오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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