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변성이 가장 무섭다
서희라는 인물.
그녀의 주변 환경은 참 척박합니다.
어머니는 집 안의 하인이었던 자와 야반도주를 하며 하루아침에 어린 딸을 버렸습니다.
아버지는 원한을 품었던 이에게 살인을 당해 비참한 죽음을 맞았습니다.
유일한 돌보미였던 할머니는 마을을 휩쓸던 전염병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먼 친척뻘 되던 자는 이 틈을 노려 집안 재산을 몽땅 자기 것으로 빼돌립니다.
"엄마 데려와!"라고 생떼를 쓰며 기절할 듯 울어대던 어린 서희에게 이 모든 비극은 하나도 비킴 없이 모두 일어났습니다. 우직한 몇몇 마을 사람들과 그녀의 몸종이었던 봉순, 길상이 그녀를 지켜주던 전부였습니다.
길상은 훗날 서희의 남편이 되었고, 봉순은 헤어져 끝내 기생이 되고 말았습니다.
주인과 하인의 관계였지만, 서희를 지키는 든든한 친구처럼, 남매처럼 어린 시절을 함께 보냈기에, 먼 훗날 이들의 만남이 낭만적일 것이라 생각했던 저의 기대는 무참히 깨어졌습니다.
토지가 품은 문장
<토지> 7권, p.199, 마로니에북스
모두 외양은 평이했다.
다 같이 하고 싶었던 말을 하지 않았다.
대결도 냉전도 아니었다. 미움은 물론 아니었다.
옛날 상태로 돌아가지 않으려는 세 사람의 노력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자기감정에 가장 냉혹한 사람은 최서희였다.
"사람이란 환경 따라서 몇 번이든 변성(變性)하는 모양이야"
봉순이를 두고 한 말인 줄을 아는 길상은 먼 산을 본다.
"아무리 환경이 바뀌어도 변성 안 되는 사람도 있지요"
"그럴까?."
"훈장어른도 그렇고 최참판댁 손녀도 그렇지요."
"듣고 보니...."
사람이란, 환경에 따라서 몇 번이든 변하기 마련이라고 혜관 스림은 길상에게 말을 건넵니다.
서로의 변화가 이들에게는 기쁨과 응원보다는 아픔이었던 모양입니다.
사람의 변성만큼 우리 마음을 휘청이게 하는 것이 있을까요?
세상 착하던 자식이 사춘기가 되면 딴 사람처럼 변합니다.
사기꾼은 '가장 믿었던 사람'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세 사람의 만남을 두고, 서희가 유독 자기감정에 가장 냉혹했던 이유도 이런 변성의 괴로움으로부터 자신을 방어 가기 위한 몸무림이 아니었을까요?
타인의 변성을 보는 것은 때론 괴롭기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잊힐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 자신의 변성은 사라지지 않고, 내 일부가 되어 버립니다.
차갑고 단단했던 마음이 아이를 낳고 기르며 조금은 말랑말랑해지고 따뜻해졌습니다.
K장녀, 모범생, 리더로서의 의무, 책임감에 억눌렸던 마음이 게으름도 즐길 만큼 여유로워졌습니다.
'성과가 없으면 의미 없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그냥 즐기는 자체에도 몰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변성에 저는 감사합니다.
하지만 저를 괴롭히는 변성도 있습니다.
절실했던 신앙과 믿음이 흔들리고 신에 대한 감사와 사랑을 잃어갈 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이 평범한 일상이 지루하고 별 것 아니라 느껴질 때.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자식에게 내 희생의 대가를 요구하는 마음이 고개를 쳐들 때.
변성이 괴로운 이유는 흔들림과 두려움 때문인 것 같습니다.
좋은 변성은 안정감과 용기를 주지만, 부정적인 변성은 깊은 곳에서 불안감을 키웁니다.
어쩔 수 없어,라고 생각해도
끝내 내 자신은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잘못된 것이며, 선한 것이 아니며, 내가 이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요.
변하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며 독한 마음으로 버티고 버텨온 서희같은 마음도,
그저 흘러가는 환경에 나를 맡겨 형편대로 변하며 살아가는 길상이나, 봉순같은 마음도,
모두 제 안에 있네요.
타인의 변성은 그렇게도 눈에 잘 띄었건만, 내 자신의 변성에는 참 무디게 살아왔던것 같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변할수가 있어? 원래 그런 사람이었던 거야?"
날카롭게 지적하고, 냉정하게 비판하고 따지며, '실망이다' 라고 쉽게도 단정지으며 말입니다.
반면 저의 변성에는 참 너그러웠네요.
타인의 변성은 제 밖으로 흘려 보낼 수 있지만, 제 안의 변성은 저의 몸 속에, 마음 속에, 어쩌면 영혼 속에 품고 가야 하는 것이기에 좀 더 예민하게 살펴보려고 합니다.
저를 괴롭히는 변성을 직시하는 것은 꽤 힘든 일이라, 실은 적당히 외면하고 싶은 욕구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브레이크를 힘껏 밝아 차를 멈추듯 그렇게 멈추어 보려고 합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유익함때문에 적당히 타협하지 말고 말입니다.
대신 선한 것, 밝은 것, 따뜻한 변성에는 과잉반응을 해 주려고 합니다. 내 자신을 과분하게 칭찬하고 응원하며, 그 쪽으로 좀 더 애쓰며 살아가게 말입니다.
이렇게 매일 조금씩 선한 변성을 위해 애쓰다 보면, 죽을 때 즈음의 저는 제 인생에서 가장 좋은 모습으로 남아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