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쓸모
<토지>를 읽으며 감탄스런 포인트가 많지만, 읽을수록 변함없는 점, 복잡한 시대상에 대한 작가의 포용력과 균형감각 또한 그렇습니다.
이 대작을 관통하는 여러 이슈들이 한쪽으로만 편향되지 않고, 균형 있는 관점을 유지합니다. 그러면서도 어떤 측면에 이르면, 작가의 단호한 철학이 분명히 드러나기도 합니다.
'균형'이라는 말은 때로는 '비겁함'이 잘 포장된 것임을 우리는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습니다.
어떤 이슈를 적당히 비껴가면서 아예 비판의 여지를 남겨두지 않는 "모호한 중립"의 입장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토지>는 다양한 등장인물들을 통해 다양한 입장을 대변케 하면서 논란의 여지를 피하지 않습니다.
<토지>라는 작품의 전체를 조망하지 않고 한 두 페이지 혹은 문장 몇 개를 들어 섣불리 비판할 수 없는 경지까지 박경리 작가는 이 작품의 완성도를 높여 놓은 것입니다.
그중 하나가 문학 특별히 '소설'에 관한 내용입니다.
토지가 품은 문장
<토지> 7권, p.358-359, 마로니에북스
"독립운동도 좋구 교육사업도 좋지만 가장 쉬운 방법으로 남을 알구 나를 아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거야. 생각을 해 보라구. 물론 글을 모르는 사람이야 별문제겠으나 글줄 읽는 사람이면은 위아래 부담없이 읽혀지는 게 소설이 아니겠느냐,
그러니까 몇몇 식자들이 새로운 문명을 두고 왈가왈부하는데 그럴 것이 아니라
다 많은 사람 일반 대중이 짧은 시일에 눈을 뜬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 아니겠느냐 그 얘기라구.
우물 안 속에서도 한 권의 소설을 통해서 그 나라의 풍물이며 새로운 사상, 그네들의 생활방도 종교 윤리관을 싹 훑을 수 있다면은
그런 작품의 소개란 상당히 시급한 일일 게고 몇 사람은 선구자가 있어야잖겠어?"
"관두어."
"관두란 말이야. 뭐 새로운 사상? 새로운 문명? 소설이란 걸 가지고 전달을 한다구?"
"그렇지 않구?"
"이봐 명빈이. 이야기란 건 말이야. 단군 할아버지 적부터 있어돈 게야.
사람은 이미 그때부터 개명을 했구.
(...)
번역이니 뭐니 하니까 하는 얘긴데, 대포나 군함 만드는 서적이면 모르까
그까짓 왜나막신 소리가 나구 양고기 누린내가 물씬 나는 그따위 사상이고 개나발이고 일없어!"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은 여러 형태로 산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형편이었습니다.
명빈이라는 인물은 독립운동도 좋고 교육사업도 좋지만, 가장 먼저 남을 알고, 나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입장에서 오히려 일본의 문물을 알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보입니다. 이를 위해서 일본 소설을 번역하는 일을 할 것이란 자신의 계획을 밝힙니다.
"몇몇 식자들이 새로운 문명을 두고 왈가왈부하는데, 그럴 것이 아니라 보다 많은 사람 일반 대중이 짧은 시일에 눈을 뜬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 아니겠느냐"는 근거를 보태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친구 의돈은 딱 잘어 "관두어"라고 말하며 날 선 비판을 이어가네요.
대포나 군함을 만드는 서적이라면 몰라도, 일반 대중이 소설을 통해 새로운 문명에 눈을 떠서 독립운동에 보탬이 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것이죠.
"왜나막신 소리 나고 양고기 누린내가 물씬 나는 것들" 일뿐 의미 없다는 것입니다.
박경리 작가에게도 소위 '문학'의 쓸모에 관한 고민이 깊었던 걸까요?
아니면, 이러한 시대적 상황일수록 '문학'의 힘과 필요를 강조하고 싶었던 걸까요?
그것이 비록 일본을 제대로 알기 위한 수단으로 쓰인다 할지라도 말입니다.
의돈은 묻습니다.
"물에 빠져 죽을 사람이 과연 시쓸 생각이 날까?
뭐 소설을 쓰겠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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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 질문을 읽으며 윤동주 시인이 떠올랐습니다.
만해 한용운, 이상화, 이육사 시인을 떠올렸습니다.
그들은 물에 빠져 죽을 사람인데, 왜 목숨을 걸고 시를 썼을까요?
- 죽는 날까지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제가 만약 <토지>의 이 장면으로 들어갈 수 있다면,
명빈, 의돈 두 인물 사이에서 이렇게 말해 주고 싶습니다.
"자신은 물에 빠져 죽을지언정, 시를 통해서, 글을 통해서
이 땅의 백성들이 살아날 것이란 소망이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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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이나 사회나, 국가도 마찬가지.
절망의 시기, 아픔의 시기에도 시가 필요한 이유,
소설이, 문학이 더욱 필요한 이유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