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리 Nov 15. 2024

<토지> 주린 배 채워주는 관계

부모와 자식




떠돌이 생활을 해 오던 '주갑'이라는 인물은 용이를 만나 주먹밥 한 덩어리를 얻어먹은 인연으로 그와 동행하게 됩니다.


용의 아들, 어린 '홍'이 또한 주갑의 격의 없고 유쾌한 성품 덕분에 금방 다가가 친해집니다.


"주갑이아재, 배 많이 고파봤소?"

"하모, 배 많이 고파봤제. 언디 굶는다고 사람으 목심이 관대로 없어 안 지니께 조화가 요상타 그거 아녀?"


이 말을 마치고 성급하게 담뱃대를 물면서, 주갑은 다음과 같이 말을 이어갑니다. 


토지가 품은 문장


<토지> 6권, 마로니에북스, p.33


"뭐니뭐니 혀도 배고픈 정 아는 그게 사람으로서는 제일로 가는 정인디,
혀서 나도 니 아부지를 믿고 정이 들어서 따라가는거 아니겄어?

부모 자석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주린 배 채우주는 거로 시작된다 그거여.

저기 보더라고. 저기 물새도 모이 찾아서 지 새끼 먼저 먹이는 거, 어디 사람뿐이간디?"



"부모 자식의 관계는 주린 배를 채워주는 관계로 시작된다 그거여!


부모 자식의 관계, 깊고도 오묘한, 우주의 어떤 원리보다도 신비로운 그 관계를 한 마디로 정의하는 것은 참 어렵습니다. 그런데 떠돌이 주갑이 툭 내던진 이 말은 그 관계의 가장 깊은 근원을 알게 하는 말인 듯싶습니다. 


주린 배를 채워주는 사람은 부모만은 아닐 것입니다.

밥 사주는 친구도 있고,  동네 김밥집 아주머니도 있고, 유명 레스토랑 셰프도 우리의 주린 배를 채워줄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공짜가 아니죠.

대가를 치러야 그들은 우리에게 밥을 줍니다.


그러나 부모는, 특히 우리네 엄마라는 존재는 아무런 대가 없이 밥을 주는 사람입니다.

그것도 (요구만 한다면) 언제, 어디서나 기꺼이 말이죠.


이 점에서는 아내도, 자식도 조금은 예외일 수 있습니다.

아내와 자식이라 할지라도 '무조건'은 아닐 수 있으니까요. 때로는 약간의 눈치도 보이죠.


하지만, 이상스런 확신이 있습니다.

우리 엄마에게 "엄마 나 배고파"라고 말한다면?

그것이 한 밤중이든, 새벽이든 언제든, 어디서든지 밥을 해 줄 것이란 확신말입니다. 


주갑은 "어디 사람뿐이 간디?"라고 묻습니다.




처음 생명을 얻은 이에게 최초의 먹을 것을 건네며 그 생명이 배고프지 않게  돌보아 주는 존재,

그 먹이를 먹고 자라며 자식은 또 부모에게 생명을 이어나갈 힘을 주는 존재가 됩니다.


부모와 자식은 서로의 주린 배를 채워주는, 결국은 생명의 뿌리는 나누는 관계이군요.

배고파 굶주렸던 주갑이에게 가난한 부모라도 곁에 있었다면, 그렇게 오랫동안 주린 배를 움켜잡고 살아야 했던 설움은 덜 했을 텐데...라는 생각을 합니다. 


"부모 자석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주린 배 채우주는 거로 시작된다 그거여.

저기 보더라고. 저기 물새도 모이 찾아서 지 새끼 먼저 먹이는 거, 어디 사람뿐이 간디?"


가장 원초적이고도, 육체에 속한 본능을 향해 있지만, 왠지 모르게 숙연해지는 관계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